밥장(36)? 이름 한번 독특하다. 밥은 영어 이름 ‘Bob’ 이고 장은 성씨다. 직업은 ‘비정규 아티스트’.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필(feel)이 꽂히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붙인 직업명이란다. 이름만큼, 직업명만큼 이력도 독특하다.
10년간 평범한 넥타이부대로 산 그는 비정규 아티스트가 되기 전까지 ‘장석원’으로 살았다. 학창 시절에는 키 작고, 축구도 못 하고 그러면서도 선생님한테 칭찬 받기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전형적인 소심한 모범생이었다. 무난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SK 텔레콤에 입사했다.
그런 그가 작년에 5년간 같이 산 부인과 이혼을 하면서 문득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진짜 사랑하는 일인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은 질문이다. 답은 ‘아니다’ 였다. 당장 뭘 해야 하는지는 몰랐으나 아니라는 것에 확신을 갖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생활은 꾸려야 하니까 일단 웹 디자인 일을 시작했고 취미였던 그림을 틈틈이 그려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그림은 화가 친구의 권유로 꾸준히 그리게 됐고, 그림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림’이었다.
“그 전까지는 일반 사람들이 정해놓은 법칙대로 살아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 길만이 살길이고 그게 최고라고 생각했죠.” 밥장은 인생의 전반부는 이혼과 함께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한다. 이름까지 바꾸면서 다시 태어났다. 밥장은 인생의 다른 길을 결정할 당시 마치 하루 중 오후 2시30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오후 3시가 되면 그날 저녁 약속 외에는 새로운 계획을 잡기가 어렵지만, 2시30분은 그나마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 같기 때문이라고.
그는 얼마 전 꼬물꼬물 혼자 그려온 그림과 짤막한 글을 엮어 ‘비정규 아티스트의 홀로그림(리더스컴 발행)’이란 책을 펴냈다. 8일부터 1주일간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첫 개인전도 열었다. 이미 하루에 수천명의 방문객을 확보해놓은 인기 블로그의 주인공답게 관람객은 상당했다. 첫 전시치고 작품도 많이 팔렸다.
밥장의 그림은 징그러울 정도로 적나라하고 원색적이다. 그래서 자유롭다. 쉽고 재미있고 화려하고 도발적이지만 큰 힘이 느껴진다. 그를 그림 그리게 하는 원동력은 ‘설레임’이다. 이렇게 탄생한 그의 그림은 결국 마음, 사랑이라는 공감대로 귀결된다.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사랑하고 싶은 이들에게 용기를, 감성이 메마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그림 테라피 같은 것이에요.”
자신의 가득찬 꿈으로 흥분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의 꿈까지도 찾아주고 싶어졌다. 번지점프를 할 때 한 발짝만 옮기면 바로 떨어질 수 있는 것처럼, 꿈도 마음만 먹으면 의외로 쉽게 찾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사춘기 소년 같은 풋풋함을 느껴요. 설레임과 상상, 이 얼마나 떨리는 느낌입니까? 오던 길을 바꾸는데 크나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막상 방향을 틀고 나니 그 용기가 2~3배로 껑충 뛰더군요.”
밥장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표현에 솔직해졌다. 이혼, 그로 인해 자주 볼 수 없는 사랑스런 딸, 도박을 했던 아버지와 같은 가족사를 거침없이 끄집어 내고 ‘섹스는 즐겁다’고도 외친다. ‘나는 A형인간, 그것도 스몰 a’라며 지나치게 소심한 자기 성격도 미리 까발린다. 그게 너무 편하기만 하다.
그는 책 읽기도 좋아한다. 철저히 외부와 고립된 채 자기 만에 세계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끊임없이 활자와 대화하며 머리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책 속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그림 그릴 때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나중에는 섬에 도서관을 지을 생각이에요. 혼자인 사람들이 와서 며칠씩 쉬어갈 수 있는 공간. 그곳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편히 쉴 수 있는, 그래서 시간까지도 천천히 곱씹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될 겁니다.”
인생의 후반부에 이제 막 돌입한 밥장. 양복을 벗어 던지고 원색 스판 티셔츠에 야구모자, 나비 선글라스를 끼고 서른 여섯 살에 그림쟁이가 된 그. 앞으로 그의 행로가 벌써부터 몹시 궁금해진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최규성 편집위원 ks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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