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실명제가 실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대법원은 명의신탁의 유효성에만 집착해 신탁자의 재산을 보호하는 입장만을 취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2단독 이종광 판사가 판결을 통해 명의신탁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15일 대법원에 따르면 이 판사는 9일 채권자들의 부동산 강제 집행을 피하려고 외삼촌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넘겼다가 나중에 이를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낸 박모씨 사건에서 “불법적 목적으로 소유권을 이전했다면 명의 회복을 요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명의신탁 판례를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현행 부동산실명제법에 따르면 부동산 명의신탁 약정은 무효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 동안 민사 상 명의신탁이 사실상 유효하다고 판단, 명의 신탁자(부동산 실제 소유자)와 수탁자(명의를 빌려준 사람)로부터 부동산을 돌려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판결해왔다.
대법원은 명의신탁 거래가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어 등기 이전이 불법행위로 인한 부당 이득이라고 볼 수 없고, 명의 신탁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행정적 제재나 형벌을 부과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대법원이 명의신탁제도를 사실상 유효하다고 인정함으로써 상속세 증여세 법인세 등의 탈세와 위장 전입 등 규제 회피, 강제집행 면탈(채권자의 채권회수를 피하기 위한 불법행위) 등 불법적인 목적에 악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수 천억원의 형사 추징금을 선고 받은 전직 대통령이 가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어 추징금을 내지 못한다고 하면서, 자식들은 수 백억원 대의 부동산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사법 현실”이라며 “타인의 이름을 빌려 투기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자신이 얻은 부에 대한 세금을 포탈하는 등의 상황은 이제 끝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수원지법 민사단독 판사였던 지난해 친일파 이근호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땅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보존등기 말소 청구소송에서 “3ㆍ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비춰보면 친일파 후손의 재산 환수 소송 같은 반민족 행위는 헌정질서 파괴행위”라며 각하 판결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 판사가 작성한 판결은 A4 용지 80여 페이지에 달했으며 이번 명의신탁 판결도 48페이지에 달한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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