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너무 잘 아는 팀들이 맞붙는 경기는 쉽게 달아오르지 않는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두 차례 맞붙었던 프랑스와 스위스는 서로에게 감출 것 하나 없는 팀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여러차례 맞붙은 것은 물론이고 소속팀에서도 수시로 서로를 만난다. 심지어 프랑스 공격수 티에리 앙리는 이날 자신을 집중 마크한 스위스 수비스 필리페 센데로스-요한 주루와 한솥밥을 먹는 처지다. 당연히 양팀 모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
프랑스는 앙리의 질주를 자제시켰고 스위스의 민완한 미드필더 역시 공격적 본능을 드러내지 않았다. 미드필드와 수비라인의 간격을 한껏 좁힌 스위스는 굳이 승리가 필요한 팀 같지 않아보였고, 프랑스 또한 스위스의 전력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적극적인 공세를 아꼈다. 0-0 무승부로 마무리된 경기결과가 두 팀의 신사협정결과처럼 느껴졌다면 억측일까. 승점 3점이 주어진 경기에서 고작 1점씩을 나눠 갖고도 불평하지 않는 양팀의 표정에서 나란히 16강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0-0으로 끝났지만 한국은 얻을 게 많은 경기였다. 지네딘 지단에게 여전히 크게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의 공격은 원톱으로 나선 앙리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했고, 결국 월드컵 본선 연속 경기 무득점 기록을 4경기로 늘려놓았다. 프랑스의 문제는 앙리와 지단을 양수겸장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노쇠한 탓에 활동반경이 줄어든 지단의 수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원톱 시스템으로 나왔고, 지단 뒤 두 명의 미드필더들은 공격가담횟수를 줄였다.
지단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전방에 품질 좋은 패스를 찔러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격진영에서 공을 잡은 뒤 동료 공격수들이 밀고 올라올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 패싱력과 키핑력이 탁월한 지단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방편이지만 수비와 미드필드 사이의 공간을 크게 좁힌 스위스의 압박은 지단과 앙리의 연결고리를 막아버렸다. 신예 리베리가 그 틈에서 간간이 위력적인 돌파를 선보였지만 이미 수비라인을 크게 끌어내린 스위스를 상대로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오히려 지단을 보좌하던 마케렐레가 전방으로 치고 올라올 때가 더욱 위협적이었다.
한국과의 2차전에서는 다를 것이다. 스위스의 중원압박을 경계한 프랑스는 미드필더를 거치지 않고 길게 뻗어나오는 롱패스를 많이 시도했다. 한국전에서는 양쪽 사이드백 윌리 사뇰(오른쪽)과 에리크 아비달(왼쪽)이 적극적 오버래핑을 시도할 것이다. 프랑스 미드필드에 힘을 실어주고 한국의 측면을 흔들어 중앙의 지단과 앙리에게 공간을 열어주려 할 것이다. 공격진을 투톱으로 구성해 앙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할 가능성도 있다. 상대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앙리가 동료 원톱을 최전방에 남겨둔 채, 그 뒷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면 스피드가 떨어지는 한국수비수들이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아예 수비와 미드필드 라인을 깊게 내려 앉혀 밀착방어전형을 구축하는 게 나을 수 있다.
G조에서 유일하게 1승을 거둔 한국 입장에서는 두 경기에 큰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두 팀은 객관적 전력에서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다. 토고전과 달리 수비쪽에 치중하면서 발 빠른 공격수를 활용해 역습을 노리는 방식의 진행이 답이 아닐까. 세트 피스 시 약점을 보인 프랑스 수비진을 감안하면 프리킥이나 코너킥 상황에 공격을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슈투트가르트에서(MBC 축구해설위원, 엠파스 토탈사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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