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서북쪽으로 1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쑤저우(蘇州)공업원구(工業園區). 쭉쭉 뻗은 8차선 도로와 곳곳의 호수와 잔디밭, 각종 조형물로 꾸민 공원과 고층 건물 숲은 마치 분당이나 일산 신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특히 차로마다 남은 시간까지 초단위로 표시되는 신호등과 PGA투어 대회까지 열린다는 단지 내의 27홀 골프장은 선진국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600병상 규모의 홍콩계 최첨단 병원인 주룽(九龍)병원과 연간 교육비가 1만달러를 넘는 정원 4,000명의 국제학교까지 감안하면 산업단지라는 말이 무색했다.
1994년부터 중국과 싱가포르의 합작으로 개발된 쑤저우공업원구의 총 면적은 여의도(2.95㎢)의 85배 규모인 253㎢. 아직 공장보다 공터가 더 많은 상태지만 삼성전자, 노키아, 지멘스, 필립스 등 세계적인 최첨단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주로 입주, 공해 시설 등이 전혀 없다.
쑤저우공업원구 투자유치부 관계자는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고려, 전자통신 정밀기계 바이오산업 신재료 등 신기술 산업의 비중을 80%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말 중국 공산당 제16기 5차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제11차 5개년 계획’(2006~2010년)이 통과된 뒤 그 동안의 성장 위주에서 균형과 분배, 조화와 친환경 정책으로 선회하기 시작한 것.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대신 지속가능하며 안정적 발전을 모색하는 ‘녹묘론(綠猫論-쥐를 잡되, 색깔도 중시해야 한다는 의미)’이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중국의 인건비가 급등하고 있는데다 원자재가마저 상승하고 있어 중국이 더 이상 기회의 땅이 될 수 없다며 ‘차이나 리스크’를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변화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그 실상을 정확히 인식,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중국 경제 성장의 심장부인 창장(長江ㆍ양쯔강) 삼각주는 새로운 중국 발전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산업 지도의 재편과 미래 중국상을 엿볼 수 있다.
창장 삼각주란 상하이를 기점으로 반경 300㎞ 이내의 쑤저우, 난징(南京), 항저우(杭州), 쿤산(昆山), 쏭장(松江) 등 양쯔강 하류 삼각주 일대의 16개 도시 지역을 일컫는 말. 창장 삼각주는 현재 거대한 IT 집적산업단지(클러스터) 지역으로 대변신하고 있다.
이미 연간 전세계 노트북 컴퓨터 생산량의 70%인 3,500만대가 창장 삼각주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세계 컴퓨터의 마우스는 50%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휴대폰 10대중 3대도 ‘메이드인 창장삼각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6개 도시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며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쑤저우와 쏭장의 중간에 위치한 쿤산이 노트북 컴퓨터 부품을 생산, 인근의 노트북 생산 업체에 공급하는 식이다. 16개 도시의 시장들은 2년마다 모여 ‘시장단정책조정회의’를 열고 도로 건설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삼성전자 중국법인 관계자는 “창장 삼각주는 저렴한 노동력은 물론 최첨단 IT 제품 생산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부품을 아주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며 진출 배경을 밝혔다.
창장 삼각주의 이러한 변화는 중국 정부가 제11차 5개년 계획에서 산업구조의 고도화, 자원 절약형ㆍ환경 친화형 사회 건설, 삶의 질 향상, 과학흥국(科學興國) 등을 주요 임무로 내 세운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관점에서 창장 삼각주 모델은 중국 전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나상진 LG화학 중국총괄 법인장은 “최근 중국 정부가 무조건적인 외국인직접투자 유치보다 친환경ㆍ최첨단 IT 산업과 연구개발(R&D) 시설 위주의 선별적 투자 유치에 힘을 쏟으면서 인건비와 제반 비용이 상승하는 등 사업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는 단기적으로는 위협이 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중국의 질적 성장을 담보하는 것인 만큼 우리 기업들은 이를 적극적인 현지시장 진출 및 투자 확대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한진 KOTRA 상하이무역관 차장은 “최근 중국의 정책이 수출과 성장에서 내수와 균형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은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며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가공 제조업에서 벗어나 내수 시장도 적극 공략하는 등 중국투자에 대한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상하이ㆍ쑤저우=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창장 삼각주, 中GDP 22.4% 차지
창장 삼각주가 중국의 신성장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창장 삼각주 지역은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 18조2,321억위안의 22.4%인 4조781억위안을 차지했다. 특히 교역규모는 중국 전체의 38.2%인 5,437억달러나 되고,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중국 전체의 46.0%인 277억달러에 달했다. 세계 500개 다국적 기업 중 400여곳이 이미 창장 삼각주에 진출한 상태다.
1~3차 산업의 비중도 4.1대55.3대40.6으로 다른 지역보다 산업구조가 고도화하고 있다. 반도체, 전기전자,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과 금융, 부동산 산업의 비중이 크다.
중국 정부는 2010년 엑스포 유치를 계기로 자국 최대의 경제 도시인 상하이를 중심으로 강소성, 절강성의 창장 삼각주 지역을 세계 6대 ‘메갈로폴리스’로 도약시키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추진중이다. 이를 위해 상하이와 창장 삼각주 지역의 15개 도시 사이에 고속철도를 건설, 3시간이내 생활권으로 묶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총연장 36㎞로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 대교 건설의 대역사도 이뤄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창장 삼각주 통관 일체화’ 제도가 시행돼 항만과 항공 운송시간이 지금까지 2~3일에서 5시간으로 단축됐다. 이로인해 물류비가 30%나 감소했다.
이곳은 또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지역이기도 하다. 지난해엔 창장 삼각주의 일부인 장쑤성에 대한 수출(222.3억달러)이 광둥성(162.2억달러)을 제쳤다. 이로인해 장쑤성이 중국 제1의 수출지역으로 부상했다. 상하이와 저장성 등 장강 삼각주 전체 지역으로 확대하면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의 50%를 차지할 정도다.
국내 기업들도 이곳에 대거 진출, 현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쑤저우에 반도체와 LCD, 컴퓨터 법인 등을 설립했고, LG전자가 난징에 LCD 디스플레이 단지를 조성, 가동중이다. 또 한국타이어와 효성T&C는 저장성 자싱에, 금호타이어는 난징에 투자했다.
이외에도 포스코특수강이 장쑤성에, 이마트가 상하이에 나가 있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내달 난징 LG전자 현지법인을 방문해 새로운 중국 전략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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