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슬픔과 분노로 가득찬 눈동자가 밤거리의 번득이는 조명과 맞부딪칠 때, 관객은 언어를 능가하는 눈빛의 의사전달력을 새삼 깨닫는다. 그 안쓰러운 눈을 하고 현란한 스크린 위를 휘청휘청 걸어다니는 모습에서 한창 때의 장궈룽(張國榮)이 슬쩍슬쩍 비칠 때면, 이 신예에 대한 충무로의 총애가 비로소 납득이 된다.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탈옥수와 죽으려고 몸부림치는 인질 형사의 기이한 형제애를 그린 영화 ‘강적’. 천정명(26)은 이 영화에서 조직의 음모로 살인 누명을 쓴 후 형사를 인질로 잡아 도주 행각을 벌이는 이수현 역을 맡아 순직보상금으로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려는 퇴물 형사 하성우 역의 박중훈(40)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남성 투톱 영화가 많아서 다 비슷비슷해보이지만, ‘강적’은 다른 영화들과 달리 매우 인간적인 영화예요. 수현은 밑바닥 인생이지만 삶의 목표와 희망과 꿈이 있는 친구죠. 그게 좌절되다 보니 계속 세상과 부딪히게 되는 거구요.”
천정명이 맡은 이수현 역은 오랜 연륜의 박중훈을 상대하는 역이라는 점이나, 도주행각을 벌이는 2시간 내내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하며 극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이제 고작 영화 세 편을 찍은 천정명의 이력으론 만만치 않은 역할이다. “저는 캐릭터를 맡을 때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은 것만 해요. 자신이 없는 건 해도 어색하거든요.” 박중훈에게 밀리지 않는 호연을 한데서 오는 은근한 자신감일까. 출발선에 선 배우가 너무 영리한 것 아니냐고 꼬투리를 잡아도 동자승 같은 둥근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띄울 뿐이다.
“전 남들이 했던 건 하기가 싫어요. 비슷한 캐릭터들을 하기 싫고, 특히 ‘조폭마누라’ 같은 시리즈 영화엔 출연하고 싶지 않아요. 제 성격에 맞는 역할들을 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강한 역을 좀 많이 했죠.”
영화 ‘강적’은 ‘종로찬가’라 불러도 좋을 만큼 유려한 영상 속에 종로의 아름다움을 빼곡히 담아냈다. 안국동 종로경찰서를 중심으로 삼청동 한옥마을, 광화문, 피맛골, 종로3가 극장가의 뒷골목 등이 스타일리시한 화면 속에서 화려하게 출렁인다. “사실 종로에는 영화를 찍으면서 처음 와봤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주로 강남에서 노는 ‘강남쟁이’거든요, 흐흐. 차 타고 강북만 넘어오면 길을 잃는 까막눈인데, 정도 넘치고 구수한 맛이 있는 종로, 참 좋더라구요.”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점을 배우로서의 단점으로 꼽는 그지만, 현장에서는 감독만이 ‘유일신’이다. “누가 뭐라 하면 마음이 빨리 상하고, 화도 많이 내는 스타일인데, 촬영할 땐 오로지 감독님한테 의존해요. 감독님과 상의한 후 연기하려고 대본도 현장 가기 전까진 안 외울 정도죠.”
천정명은 앞으로 멜로가 하고 싶다고 했다. “로맨틱 코미디 말고 정통 멜로를 하고 싶어요.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 같은 제 나이 또래의 가슴 아픈 청춘 멜로요. 그 주인공 츠마부키 사토시가 저를 닮았다는데, 제가 추구하는 연기가 딱 그 배우 스타일이거든요.”
‘강적’은 ‘정글쥬스’를 만든 조민호 감독의 두번째 영화로, 현란한 편집과 화려한 영상, 참신한 내러티브와 재치 넘치는 대사 등이 근래 선보인 남성 투톱 영화 중 첫 손에 꼽을 만하다. 22일 개봉, 15세.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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