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대표작 ‘독일영년’(1947)은 한 소년을 통해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독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창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가야 할 소년 에드문트에게 현실은 출구가 막힌 터널과도 같다. 가족의 생계에 힘을 보태기 위해 폐허가 된 베를린 도심을 떠도는 그에게 어느 누구도 관심과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 병든 아버지가 사라져야만 가족이 산다고 생각하던 에드문트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다.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소년은 무너진 건물 위에서 몸을 던진다.
어린 에드문트의 비극은 ‘내일’이 없는 나날을 보내던 전후 독일의 모습을 상징한다. 국토가 양분되고 ‘전범 국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던 독일의 부활을 점쳤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쟁의 여파로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조차 못했던 서독은 54년 스위스 월드컵 결승에서 헝가리에 3-2 역전승을 거두며 극적인 우승을 일궈낸다. 일명 ‘베른의 기적’이라 불리는 서독팀의 투혼은 전흔에 신음하던 국민들의 마음에 희망의 싹을 움트게 했고, ‘라인강의 기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서독팀의 활약을 한 가족의 화합과 버무려낸 손케 보르트만 감독의 ‘베른의 기적’(2003)은 독일 국민이 어떻게 폐허를 딛고 재기에 성공했는지를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한국의 월드컵 첫 승으로 전국이 열광하는 가운데 2002년 월드컵 4강의 기적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박광수 감독의 ‘눈부신 날에’이다. 막장 인생을 살아가는 한 남자가 월드컵을 통해 한 여자 아이와 만나면서 삶의 희망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월드컵의 기적이 삶의 기적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축구는 크고 작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현실의 거울인 영화는 그 기적을 전파해 관객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준다. 한국팀이 독일 월드컵에서 코 끝 찡한 명승부를 연출하며 충무로에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소재를 많이 던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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