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붉은 함성이 먼저 간 아이들의 피 맺힌 절규로 들립니다.”
온 국민이 월드컵 토고전 응원 열기에 들떠 있던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는 조촐한 집회가 열렸다. 4년 전 한일 월드컵 기간 중 미군 장갑차에 스러져갔던 효순 미선 두 어린 영혼을 기리는 행사였다.
“살았더라면 열여덟, 그들도 붉은악마가 돼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을 텐데…”마음이 무거워진 참석자들은 “효순 미선양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월드컵을 알리는 대형 조형물과 현수막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4년 전의 비극이 더 이상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시민들은 “아,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나”라고 한두 마디 말하며 지나갈 뿐이었다.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올해는 월드컵 열기에 묻혀 전국적인 행사를 여는 것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4년 전 거리를 촛불로 뒤덮었던 추모의 열기를 떠올리는 참석자들의 푸념만이 길게 이어졌다.
지구촌 축제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4년 전 월드컵에 가려져 있던 억울한 두 죽음의 의미를 뒤늦게 타오른 촛불 속에서 확인했었다. 모두가 하나가 됐던 그 날의 의미를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 소녀에게 갚아야 할 빚도 아직 남아있다. 사고가 발생한 경기 양주와 인근지역에서는 통행문제로 주민과 미군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는 이제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월드컵은 4년마다 돌아오지만 효순과 미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뜨거운 월드컵의 열기 속에도 한번쯤은 두 소녀의 죽음을 차분하게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부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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