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 참패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른바 정책의 ‘우향우’를 모색하면서 당청간 냉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 각종 개혁정책에 대한 당의 재검토 목소리는 부동산ㆍ세제 개정요구에서 급기야 대북송전사업에 대한 내년도 예산배정 문제까지 건드렸다.
김근태 의장의 비대위 체제에서 시동이 걸린 이 같은 움직임은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다. “국민이 원하면 고쳐야 한다”는 논리로 청와대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물론 김 의장 등은 “참여정부의 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단서를 달고는 있다. 하지만 무게중심은 “필요하다면 계급장을 떼고 토론해보자”(김부겸 상임위원)는 얘기가 나올 만큼 궤도 수정쪽에 실려 있다. 김 의장도 13일 의원총회에서 “집권여당이 맡은 일을 못하면 국민이 고통을 받는다”는 말로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김 의장은 당내 일각으로부터 “좌파색이 짙다”는 지적을 받던 재야파 수장이다. 그런 그가 자신과 대척점에 서있던 실용파의 정책적 요구를 대폭 반영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데는 여러 함의가 담겨있다.
무엇보다 이대로 가서는 10%대로 추락한 당 지지율을 반전시키지도 못하고 몰락할 것이란 위기감이 첫째다. 한 당직자는 “국민의 열에 아홉은 돌아선 마당에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며 “국민이 원한다면 노무현 대통령과도 대결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당의 요구를 수용하면 윈윈이지만,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다”며 “최종 심판은 민심이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에선 노 대통령의 ‘마이웨이’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는 당청간에 파열음이 터질 때마다 당청 일체를 강조하며 봉합됐던 과거 해법과는 다르다. 유시민 의원의 입각 문제로 개각파동이 터진 올 초만 하더라도 우리당은 청와대와 정면으로 맞서기 보다는 정무수석, 정무장관 부활론을 제기하는 등 긴밀한 당청 협력관계 복원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상호 이견을 조정하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전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차별화가 더욱 강조된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당에서 말은 많은 데 정작 우리한테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며 당혹해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선거참패 책임이 주로 대통령에게 있으며,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인식 아래 의식적으로 선을 긋는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측은 부인하지만, 우리당의 이 같은 입장은 노 대통령의 탈당 등 정치적 이별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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