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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요와 완보의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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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요와 완보의 행로

입력
2006.06.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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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에 대해 '안다'란 우리말은 사실 그것에 관해 인식하거나 이해한다와, 그것과 친하다의, 이중적인 뜻을 갖고 있다는 걸 새삼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구분없이 뒤섞어 쓰면서 우리는 그 흥미로운 오류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예컨대 와인을 좋아하느냐 내지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느냐는 등의 질문에 대해 공히 '잘 모른다'라고 대답하는 방식 말이다.

● '안다'라는 말의 두 가지 의미

취향이나 선호에 관한 물음이었음에도 이에 대해 아니다 또는 관심이 없다라는 대답 대신에 어찌된 일인지 흔히들 '모른다'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도 그것과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을 혹 잠시 잊은 나머지 하고 있는 말이 아닐까. 마치 역으로, 충분히 이해는 하고 있으나 삶에서 결코 쉽사리 친해지지 않는 것들 또한 흔하듯이.

올더스 헉슬리라는 영국의 지성조차 마침 지난 세기 중반에 음악, 미술, 여성 세 영역을 들며 '일생을 통해 사랑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닿지 않는 것들'이라 쓴 바도 있다.

어쩌면 이 '모른다'라는, 의식의 안개 같은 현상 속에 아름다움의 더 짙은 경험으로 이끄는 문의 열쇠가 있으리라는 쪽으로 내 생각은 이미 기운 편이다. 즉 그것이 문화든, 예술이든, 또 자연이든, 새로운 장소든 그 영역에 익숙해져 가되 한편 그 얼개나 깊이나 이면에 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른다'란 의식 상태를 급히 해소하려 들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의식 중에 무지나 미지(未知), 호기심 따위로 물든 것들은 마치 비에 젖은 옷처럼 축축하고 불편해 순간 벗어버리고 싶은 건 사실이다. 문화나 예술의 일정한 세계에 빠져든 나머지 궁극에 우리는 그것이 보여주길 그리 달가와하지 않는 이면을 자꾸 캐려는 본능이 있다.

기실 그래 봐야 번번이 기대치 않은 공허함만 우두커니 우릴 기다릴 뿐인 걸 겪으면서도. 무언가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바로 이 '미지'라 불리는 우리 의식의 그림자 진 부분의 신선도를 어떡하든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철저한 이방인이 되고 싶어도 자꾸 관광객 취급을 하며 지나치게 친절하게 가르치려 드는 유럽의 구석구석이 우릴 김빠지게 하는 일, 홍보랍시고 감독 배우들이 맨 얼굴로 몰려 나와 영화의 메이킹 관련 에피소드들을 시시콜콜 밝히는 일, 화가나 건축가에게 자신의 작품 설명해달라고 조르는 일, 또 방금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 사람 불러 세워 마이크를 들이대는 일 따위가 바로 앞서 말한 '미지'의 신선도를 애써 떨어뜨리는 무심한 행위들이 아닐까 한다.

● '교감의 오솔길'에서만 만나는 감동

감동을 제공하는 자와 이를 누리는 자와의 사이에는 이른바 교감의 오솔길들이 흩어져 있다. 이 길들은 대체로 더디게 돌아가야 하는 길, 소요(逍遙)와 완보의 행로다. 우리가 삶을 통해 기꺼이 그처럼 단서없는 루트를 취하곤 하는 이유 역시 그곳에 미지의 꽃들이나 새들이 번갈아 자리하곤 한다는 전설을 앞선 이들로부터 들어서일 거다.

김헌 건축가ㆍ어싸일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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