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김규철(43ㆍ가명)씨는 14일 아침 ‘희망의 열차’ 여행을 떠난다.
노숙인이 무슨 여행이냐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김씨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지난 3개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일한 자신이 스스로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김씨는 서울시가 선발한 노숙인 ‘모범생’이다. 서울시는 2월부터 시작한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 참여자 중에서 모범적이고 성실한 노숙인 140명을 뽑아 기차 여행을 선물했다.
김씨는 14일 다른 노숙인 139명과 함께 용산역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고 충남 홍성에 내려 태안군 안면도 관광을 한 후 저녁에 돌아올 예정이다.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장애인 복지관 신축공사 현장에서 만난 김씨는 “여행을 가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과거의 아픈 이력과 여행 후 미래의 계획을 풀어 놓았다.
김씨는 3년 전만 해도 50~60억원의 돈을 주무르는 벤처 사업가였다. 경기 수원에서 노래방 네트워크 사업을 하면서 제법 돈도 벌어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갑자기 자금을 회수하면서 사업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 이내 빈털터리가 돼 버렸다.
2년여 동안 친구들과 친척을 찾아 다니며 재기를 노렸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괴로운 마음을 술로 달랬고 서울역 등을 전전하며 몸을 맡겨야 했다. 8개월 전 노숙자 쉼터를 찾았을 때는 아내마저 집을 떠났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김씨를 다시 세운 것은 서울시의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이었다. 3월15일 영등포 장애인복지관 신축 공사현장에 배치된 그는 이를 악물고 일했다.
처음엔 그저 현실을 잊기 위해 일에 매달렸지만 하루하루 보람이 쌓이고 보람은 다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키웠다. 월 100만원의 고정 수입이 생기면서 생활은 점차 안정돼 갔고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처음으로 목돈을 받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며 “정당하게 일해서 돈을 벌게 되니 마음까지 편안하다”고 말했다. 김씨의 목표는 작은 분식집을 차리는 것이다. 김씨는 “내친 김에 좀 더 고생해 9개월 정도 지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며 “40대에 너무 비싼 인생의 수업료를 치렀지만 그만큼 값진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현재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숙인은 1,057명. 4개월 전 시행 초기만해도 땜질식 처방과 선심행정이라는 비판이 따랐지만 점차 노숙자에게 희망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정착하고 있다.
2월초부터 327명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근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고, 이미 다른 직장을 찾은 노숙인도 211명에 이른다. 신용불량자의 낙인이 찍힌 670명이 시의 도움을 받아 예금통장을 발급 받았고 이중 68명은 300만원 이상을 모았다.
이 달 말 퇴임하는 이명박 시장은 12일 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청계천 복원과 이 사업을 꼽으면서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고서는 노숙인들의 진정한 사회 복귀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앞으로도 사업이 계속됐으면 하는 희망을 전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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