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변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5ㆍ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어렵사리 김근태 의장 체제를 출범시킨 이후 핵심 정책에 민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 단적인 예가 2007년도 예산안 편성을 위한 12일의 당정협의. 우리당은 이날 참여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중인 대북 송전사업 관련 예산을 정식 예산에 포함시키는 것을 유보했다.
대북 송전사업비를 포함, 올해보다 4,042억원이 늘어난 1조6,600억원 규모의 남북협력기금 증액안을 추후 논의대상으로 넘긴 것이다. 예산안 자체를 백지화한 건 아니지만 DJ정부 이후 여당이 대북 협력사업 예산에 제동을 걸었던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대목이었다.
우리당은 이에 대해 “선거에서 나타난 것처럼 통일부 예산은 일방적 퍼주기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가 있어왔는데 내년도 남북협력기금이 올해보다 32%나 증액됨으로써 오해가 더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노웅래 공보부대표)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추후 남북관계 성과와 사업의 현실화 여부를 봐서 단계적으로 반영하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교류협력사업을 확대하고 예산도 늘려야겠지만, 지방선거에서 다수의 국민이 ‘주고 받는 남북관계’를 주장한 한나라당을 지지한 만큼 이를 수용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사업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 2년 가까이 지속돼온 교착상태의 물꼬를 트는 계기였다는 점, 조만간 DJ의 방북이 예정돼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당이 이날 구성키로 한 ‘서민경제 회복 추진본부’ 구상에서도 변화의 일단이 읽힌다. 사실상 이름 뿐이었던 기존의 위원회와는 위상과 격이 한참 다를 것 같다.
김 의장 본인의 정책기조에서부터 변화가 감지된다. 대기업 CEO 출신인 이계안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추가적인 경제성장을 통한 복지재정 확충을 강조, 분배론자라는 세간의 평가를 무색케 했다.
‘하반기 1% 추가성장 달성’이라는 목표치를 내세운 우리당은 추진본부를 중앙당의 총력체제로 꾸릴 예정이다. 추진본부 내에 고용창출팀ㆍ투자활성화팀ㆍ부동산정책팀ㆍ공공정책예산확보팀 등을 TF 형식으로 구성하고, 전략기획파트 정도를 제외하고는 당직까지 개편해 실무인력을 총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최대 목표는 경제주체간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는 것이다. 김 의장이 직접 노사대표는 물론 외국기업 CEO도 만날 예정이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과의 면담 추진도 같은 맥락이다.
이계안 비서실장이 직접 당정협의를 챙기면서 당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대야관계에 있어서도 협상부터 하던 기존의 관행 대신 공청회나 대국민 토론회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물론 당내에선 “대북정책의 원칙이 폐기되는 것 아니냐”, “일방적인 성장론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혹독한 민심을 경험한 터라 변화의 흐름은 대세인 듯 하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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