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대~한민국’을 붉게 물들일 결전의 태양이 솟았다.
13일 밤 독일월드컵 첫 경기(토고전)를 앞둔 11인의 태극전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승리의 날을 벼리고 있을 터. 한반도엔 붉은색 ‘걸작’ 모자이크의 한 점이 되기를 바라는 너와 내가 있다. 125만명(경찰 예상)의 12번째 전사는 거리응원 메카인 서울광장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등 전국 146곳에서 붉은 함성을 가다듬고 있다. 거리응원 숫자는 4년 전 미국전 77만명이 최고였다.
나와 너의 경계를 무너뜨릴 대동(大同)의 물결에는 탑골공원에서 소일하는 노인도, 취업 준비에 바쁜 대학생과 고시생도, 일본에서 건너온 새댁도, 전방을 지키는 군인도, 교도소의 재소자도 함께 한다.
12일 탑골공원에서 만난 김장수(64) 할아버지는 신바람이 나 있었다. 주변의 노인들을 모아놓고 축구 얘기에 여념이 없다. 그는 붉은 악마 티셔츠와 머리 두건을 온 가족이 함께 장만했다고 자랑했다. “토고전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 며느리, 손자까지 대식구를 거느리고 서울광장에 갈 거야.” 그가 즉석에서 “대~한민국”을 열창하자 공원에서 유유자적하던 노인들도 손을 번쩍 들고 함성을 질렀다. 13일 밤 서울광장엔 그를 비롯해 10만여명이 모일 전망이다.
각 대학들도 노익장에 질 새라 토고전에 맞춰 다양한 ‘캠퍼스 응원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양대는 응원단과 수화동아리가 흥을 돋우고, 한성대는 응원가 가요제로 분위기를 띄우는가 하면, 건국대와 서강대는 교내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한다.
광운대는 지역주민과 함께 거리응원을 펼친다. 대학생 이지현(23ㆍ여)씨는 “취업걱정은 잠시 접고 멋지게 놀아볼 생각”이라며 “승리에 대한 염원은 간절하지만 온 국민이 흥겹게 즐길 수 있는 축제만 돼도 좋다”고 했다.
호프집과 대형 극장에선 ‘실내 응원전’이 펼쳐진다. 하우스맥주 전문점 ‘치얼스 브루’는 200인치 초대형 스크린과 푸짐한 경품을 내걸고 한층 업그레이드 된 ‘맥주 바’ 응원전을 펼친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프리머스시네마도 극장 응원전을 개최한다.
결혼으로 한국인이 된 외국인 새댁들은 기대가 남다르다. 스즈키 미와코(27)씨는 “2년 전 한국으로 시집왔는데 4년 전 일본에서 TV로 지켜본 붉은 물결의 현장에 바로 내가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13일은 내가 진짜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라고 기뻐했다.
어쩔 수 없이 거리응원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같았다. 국방부는 최전방 부대를 제외한 일반부대는 부대장의 재량에 따라 오후 9시30분 점호 이후에 토고전을 시청할 수 있게 했다. 법무부 역시 교도소와 구치소의 취침시간을 바꿔 재소자와 구치소 수용자들이 한국대표팀의 경기를 생방송으로 볼 수 있게 했다.
거리응원의 질서를 도맡고 뒤처리를 담당할 경찰과 미화원들도 들떠 있긴 마찬가지다. 일선 경찰은 “몸은 피곤해도 이기기만 하면 바랄 게 없다”고 했고, 서울 종로구청 청소행정과 정욱성(41) 작업팀장은 “축구대표팀도 4강, 시민의식도 4강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거리응원 인파가 교통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3단계 시나리오를 예상해 경찰력을 운용할 수 있도록 안전지침을 마련했다.
우리의 첫 상대인 토고를 위한 응원도 있다. 10평 남짓한 이태원의 아프리카음식점 ‘해피홈레스토랑’에선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이 모여 ‘그들만의 검은 응원전’을 펼친다. 나이지리아인 애모비 엠바츄씨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축구를 잘해서 자랑스럽다”며 “토고가 반드시 승리해 검은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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