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오진령(26)씨를, 사람들은 ‘유랑인’이라고 부른다. 남들은 거들떠 보지 않는 서커스에 홀려 학교를 빼먹고 전국을 떠돌았다. 그것으로도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이번에는 인형을 이끌고 배회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모아 이제 ‘거미여인의 꿈’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곡마단 사람들’ 이후 3년 만에 갖는 사진전이다.
사진에는 한 여인과 인형 여덟 개가 등장한다. 사진 속 여인은 작가 자신이고 인형은 그가 실리콘으로 직접 만든 것이다. 여인과 인형이 묘한 분위기를 낸다.
‘거미여인의 꿈’을 설명하려면 서커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열 여덟 나이에 그는 홀연히 한 서커스단의 공연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 서커스의 맥을 잇는 동춘서커스단이다. 그들과 함께 온 나라를 누볐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돌아본 자신은 서커스단의 이방인에 불과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떠돌아 다니더라도 이제는 내가 주인공이 돼야 겠다.’
떠나는 길에는 친구가 필요했다. 키 1m의 인형 친구 여덟을 만들었다. 인형과 의상을 차에 싣고 전라도, 강원도로 무작정 여행했는데 그것이 ‘거미여인의 꿈’의 시초였다.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어요. 하다 보니 사진 작업이 된 겁니다.”
작품 속의 여인은 뒷모습을 보여주거나 팔, 다리 등 신체의 일부만 살짝 드러내 보일 뿐이다. 여인과 달리 인형들은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과시한다. 돌 틈 사이에 숨어 “나 잡아 봐라”하고 장난치는 것 같고, 실연의 상처를 지닌 영혼을 표현하기도 한다. 한데 분위기는 영 기이하다. 조금은 음산한 기운도 돈다. 인형이든, 여인이든 그것들이 배치된 공간과 이상하리만큼 어우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효과다.
이렇게 전국을 돌며 혼자 만을 위한 퍼포먼스를 한 지 벌써 3년째다. 운전 도중 적당한 장소를 정해 인형을 배치하거나 자신이 모델로 나서 나무에 매달리는 등의 연출을 한다. 이를 보고 동네 사람이 하나, 둘 모여드는데 그럴수록 사람을 피해 자연 속으로 깊숙이, 더 깊숙이 들어가 작업을 했다.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하니까 주로 자동 셔터로 사진을 찍어요. 작업의 묘미가 거기 있습니다. 찍은 후에야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진을 보기 전 궁금함에 설레는 느낌. 찍는 순간 생기는 ‘우연’이란 것이 매력적이지요.”
사진 속에 등장하는 그 여인은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굉장히 낯선, 숨겨진 자아라고 말한다. 인형들도 결국에는 모두 자신을 뜻한단다. 작품 속의 여인이나 인형 등 또 다른 자신을 그는 그물 치고 그 그물에 걸리는 곤충을 잡아먹는 거미에 비유했다. 그래서 ‘거미여인의 꿈’이 이번 전시회의 이름이다. “나 자신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내면에 꿈틀거리는 그 무엇, 그게 저도 모르는 제가 꾸고 있는 꿈일 지도 모릅니다” 전시는 금호미술관에서 18일까지 계속된다. (02)720-5114
조윤정기자 yj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