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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석과불식(碩果不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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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석과불식(碩果不食)

입력
2006.06.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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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수상록이라는 찬사를 받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8일 정년퇴임 강의를 하면서 후학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은 ‘석과불식(碩果不食)’이었다.

1968년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인생의 황금기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그 절망적 상황에서 오히려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관조하는 사색의 글로 감동을 주었다.

출소후 성공회대 교수가 된 이후에는 논어 등 동양고전을 해박한 지식과 알기 쉬운 현대적 설명으로 풀어가는 명강의로 유명했다.

▦ 주역에 나오는 석과불식은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의미지만 신 교수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앙상하게 뼈대가 드러난 나무의 가지 끝에서 빛나는 가장 크고 탐스러운 씨 과실은 한 개에 불과하더라도 희망이다.

그 속에 박혀 있는 씨는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 교수는 이 말을 ‘희망의 언어’라고 덧붙였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가을철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감을 따면서 마지막 몇 개는 까치밥으로 남겨 두는 우리 선조들의 배려에도 자연과의 공존의식 못지 않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는 후손들을 위해 어떤 씨 과실을 남길 수 있을까. 걱정스럽게도 지금 추세라면 미래를 위한 씨 과실이 아니라 짊어지기 힘든 부채만 잔뜩 남겨주는 ‘염치 없는’ 조상이 될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우선 급속히 진행되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 때문이다. 두 현상이 겹치면서 미래세대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2030년 젊은 세대의 노인부양부담은 지금보다 3배나 늘어난다. 국민연금도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현행 방식을 개혁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급여의 3분의 1 이상을 연금으로 내야 할 판이다.

▦ 후손에게 못할 짓은 이뿐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튼튼하던 국가재정은 최근 정부지출이 늘어나면서 점점 악화하는 추세다. 지난 3년간 86% 불어난 국가부채는 지난해말 현재 248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의 30%선을 넘어섰다.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빚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고용 문제에서도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쳐놓은 제도적 울타리들은 젊은이들의 취업을 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앞 세대의 희생을 통해 풍요를 물려받은 세대로서 더 많은 씨 과실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은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임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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