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오늘 우리 모두는 환희와 열정에 가득 찼던 'Again 2002'를 꿈꾸고 있다. 이 꿈은 한국인은 마음 먹으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객관적인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것은 단지 바람일 뿐이다.
바람이 과도하면 항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과소비, 과음처럼 지나치면 사회적인 비용이 불필요하게 지불된다. 작금의 독일월드컵 보도는 우려되는 과소비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디어가 주도하는 월드컵 열풍이 미디어 광풍이 되고 있다는 진단 때문이다.
최근 스포츠가 미디어와 결합된 미디어스포츠로 변화되면서 이러한 현상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 동시에 이 미디어스포츠가 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결합이 되면서 쇼 스포츠로 탈바꿈하여 순수한 글로벌 스포츠축제인 월드컵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월드컵 공식음악, 꼭짓점 댄스, 응원행위가 결합되면서 방송사의 월드컵 보도는 쇼 스포츠의 위상도 벗어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축구연맹의 마케팅 전략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세계축구연맹은 월드컵을 막대한 수익이 남는 상품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세계축구연맹이 꾸준히 계획한 월드컵의 상품화를 시험한 무대였다. 2006년까지의 방송중계권을 엄청난 액수로 독일의 기업에 판매하여 월드컵을 지구촌의 축제가 아니라, 지구촌의 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2002년 월드컵 주최국이었지만 엄청난 중계권료를 지불해야만 했으며, 주관방송사의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세계축구연맹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에 따라 우리는 보조역할만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방송사는 세계축구연맹의 이러한 상품화 전략에 따라 더 많은 광고상품을 판매하고, 기업적인 마케팅 전략을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모든 방송사가 '월드컵에 올인'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바로 'Again 2002'라는 꿈은 이러한 상황의 연장선상에 있다. 방송사와 기업이 마케팅적인 대성공을 다시 재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꿈은 글로벌적인 월드컵의 의미를 축소시켜서 지역화시킨다는데 큰 문제점이 있다. 우리는 월드컵을 통하여 글로벌한 공정경쟁의 의미를 배워야지, 애국주의에 빠져 민족의 의미만을 높이는 모습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역동적인 새로운 응원문화를 만들어냈으며 훌리건에 반대되는 콜리건(korligan)을 전 세계에 등장시켰다. 이러한 2002년의 긍정적인 모습을 2006년 월드컵 방송에서는 또 다시 강조하고, 과도한 승리지상주의를 벗어나도록 성찰의 기회를 제시해야 한다. 축구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낸 문화적인 의미를 승화시키는 데 우리언론이 정교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방송들은 오로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만을 외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6년 월드컵이 끝난 후 우리 방송에 대한 평가가 '마케팅에 올인한 흥분한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 항시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다양한 의견 형성에 이바지하는 것이 언론의 생명이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며,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더 많다. 월드컵은 지니의 요술램프 같은 원더(wonder)컵이 아니다.
송해룡ㆍ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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