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을 발표하였다. 아직 세부 실천계획이 발표된 것도 아니고 그저 기본계획의 시안에 불과한데도 벌써부터 말들이 많은데, 정부의 발표를 반기며 그것이 실제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보다는 정부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냉소와 비난의 말들이 대부분이다.
● 국민에게 출산 강요할 수는 없어
왜일까? 정부가 이 기본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년간 각계의 전문가들을 통해 충분히 논의되고 검토되어진 내용을 나름대로 정성껏 준비하여 발표하였는데, 왜 국민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한 것일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정부가 내어놓은 기본계획이 지나치게 출산을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그 ‘돈’은 모두 국민으로부터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한 반감을 들 수 있다. 둘째 결혼과 출산을 유도할 만한 획기적이거나 새로운 대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따가운 시선의 기저에 깔려 있는 이러한 이유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 맞는다고도 할 수 없다. 분명 우리사회는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사회적 조건을 가지고 가정과 직장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못한데,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통해 그러한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마련해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경제 사정이 좋지 않고 특히 젊은 여성층의 교육수준이 향상되어 경제활동에 대한 욕구가 높은 시기에 정부에서 양성평등을 확대하고 보육의 양과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 것은 분명 환영받을 일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도 국민도 출산장려를 너무나도 절체절명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출산장려라는 궁극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준비하여 발표했고, 국민은 이를 보면서 과연 출산장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의아해 하고 있는 것이다.
저출산이 인구폭탄으로 가까운 장래에 우리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출산을 장려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출산장려를 정책의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고의 틀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책을 시행한 후에도 만일 출산율이 오르지 않으면 정부는 스스로의 정책을 실패했다고 평가하거나 혹은 따라주지 않은 국민을 비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 방법은 단순하다. 바로 출산장려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대신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해 온 양성평등과 가족문제 그리고 보육환경 개선 자체를 정책의 대상과 목표로 삼는 것이다. 정부의 기본대책에 포함된 내용은 바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 요소들이다.
우리보다 저출산 역사가 길고 정부의 저출산 대책 같은 출산장려정책을 편 나라들도 정책에 의해 출산율이 향상했다는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그러한 정책을 통해 남녀가 가정과 사회에서 동일한 대우를 받고, 태어난 아이가 부모와 사회의 책임있는 돌봄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였다. 우리의 목표도 이처럼 출산장려에 매달리기보다는 사회통합과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 양성평등 등 시스템 구축이 우선
더 이상 정부는 국민에게 출산을 하라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출산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국민들로 하여금 출산에 대한 반감을 키우고 있다. 출산은 개인적인 선택이다.
그 선택에 도움이 되든 안 되든 후진적인 보육문화를 개선하고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노력 자체에 더욱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그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단계적 절차를 보다 세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조영태ㆍ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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