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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난한 연인을 위한 커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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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난한 연인을 위한 커플링

입력
2006.06.0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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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을 엮어 반지를 만든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토끼풀 커플링이다. 요즈음 어디 커플링 한 쌍 해 끼우지 못할 커플이 있겠냐마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가난한 연인을 위해 색다른 제안을 하겠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귀엽다 못해 앙증맞은 커플링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하지만 너무 궁상맞다고 타박하지 않기를 바란다.

● '주름잎' 꽃을 아십니까

들판을 샅샅이 뒤져 주름잎을 찾아야 한다. 어디나 있지만 찾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주름잎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파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꽃이다. 어떤 꽃이냐고? 손톱 크기만 한데 너무 작다는데 실망하지 말기를. 사실 손톱 크기 정도면 다른 들꽃들에 비하여 꽤 큰 편에 속한다. 꽃마리나 쇠별꽃보다는 크다.

옅은 보라색이 나는 통꽃으로 큰 꽃잎 하나가 아래로 넓적하게 혓바닥을 내민 듯 벌려 있고 끝이 둥글게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아래쪽의 꽃잎 가운데쯤에 두 줄기 주름이 솟아올라 있으며 그 언저리는 노란 색이 점점이 박혀 있다. 위쪽의 작은 꽃잎은 삼각형모양으로 끝이 조금 갈라졌다.

꽃받침은 다섯 갈래이고 꽃잎보다 약간 큰 잎은 타원형으로 톱니가 나 있으며 위로 가면서 어긋나게 나온다. 키가 한 뼘을 넘지 않으니 찾으려면 허리가 아플 것이다. 꽃은 5월에 피기 시작하여 늦여름에도 볼 수 있다.

꽃은 예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평범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너무 작아서 귀여워는 보인다. 주름잎 꽃을 찾았다면 다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꽃을 따서 손가락에 올려놓고 찬찬히 살펴보기 바란다.

꽃이 조금 야하다. 남자가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아니 아무래도 남자가 커플링을 선사하는 게 더 어울릴 테니까(아닌가?). 먼저 꽃받침을 조심스럽게 제거한다. 이때 암술이 달려 나와야 한다.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큰 잎을 조심스럽게 잡고 그 위쪽으로 난 작은 돌기처럼 보이는 작은 꽃잎을 살짝 벗겨낸다.

이건 금속세공사의 기술만큼 섬세해야 하는데 끝 쪽을 거의 1밀리미터만큼만 잡고 벗겨내야 한다. 다른 손 검지로 꽃의 아래 부분을 누르면 삼각형처럼 생긴 위쪽의 꽃잎 끝을 더 잘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끝가지 벗겨내면 아마 작은 원 두 개가 보일 것이다. 이제는 꽃의 아래쪽을 잡고 큰 잎을 뒤로 완전히 젖힌다. 그러면 짜잔! 드디어 두 개의 원을 그린 커플링이 동그랗게 아래위로 나타날 것이다.

자세히 보면 별처럼 생긴 하얀 보석이 가운데 박혀 있다. 장담하건대 전국에 있는 보석상점을 다 뒤져도 그보다 더 아름답게 세팅된 커플링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작아서 손가락에 끼워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 하지만 그걸 연인에게 보여주고 사랑의 맹세(내용은 각자 알아서 하시도록!)를 하면 언약식은 무사히 치를 수 있을 것이다.

● 자연은 결코 우리를 실망 안 시켜

손이 무딘 남자들에게 이 말은 전해주어야겠다. 한번 커플링을 얻는데 실패했다고 실망하지 말기를 바란다. 꽃은 얼마든지 있다. 하나의 주름꽃을 찾았다면 그 주위에 꽃들은 얼마든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자연은 사랑의 맹세를 위해 경건하게 들판에 서 있는 당신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김진송 목수ㆍ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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