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앨런 그린스펀의 애매모호한 화법이 그립다.”
취임 4개월째를 맞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나날이 솔직해지는 발언에 시장이 출렁이면서 ‘버냉키의 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은 7일 “버냉키 의장은 이제 자신의 솔직함이 금융시장에 어떤 충격을 가했는지 확실하게 느꼈을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교묘하고 모호한 발언으로 시장을 혼란스럽게 해온 전임자 앨런 그린스펀을 그리워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버냉키 의장은 5일 워싱턴서 열린 국제금융회의에 참석해 “미국이 저성장기에 접어드는 시점에 나타난 최근의 소비자물가 급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FRB는 이를 예의 주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누가 들어도 금리 인상을 겨냥한 이 말에 세계 증시는 곤두박질했다. 발언 후 이틀 동안 뉴욕 다우존스 지수는 250포인트 이상 하락했고, 나흘째인 7일에는 심리적 지지선인 1만1,000포인트가 붕괴됐다.
버냉키의 직설적 언사는 4월에도 시장을 한차례 뒤흔들었다. 그는 4월 27일 미 의회 증언 도중 “경기 전망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미래의 특정 시점에 한두 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추가적 금리인상이 없다는 듯한 말을 던졌다. 15개월 연속 이어진 금리 인상 중단으로 시장에 돈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주가는 치솟았다. 그러나 불과 4일만에 CNBC 앵커 마리아 바티로모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이 나의 말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밝혀 주가는 다시 바닥을 쳤다. 바티로모와의 독대를 두고 경제 및 언론계는 “FRB 의장이 개별 인터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타임은 “주식 시장은 버냉키의 입에서 주택시장 냉각과 소비지출 둔화, 그리고 예상 밖의 고용창출 감소 얘기가 나올 때만 해도 금리 인상 중단에 대한 희망을 가졌으나 5일 발언으로 기대감은 증발했다”며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기습적 변화’가 엄습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7일 “버냉키 의장은 세계 금융시장 인플레이션과 싸우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터프 가이(강한 FRB 의장)’ 이미지를 심으려는 듯 하다”면서 “그의 표현방식은 매우 남성적이며 시장에 ‘덤벼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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