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보면 맞은편에서 어떤 사람이 깜빡 반색을 하며 다가올 때가 있다. 평소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편이라서, 잘 아는 사람이려니 나도 지레 함빡 웃으며 걸음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빤히 본다. 누구시더라 곰곰 생각하며 그의 이목구비를 뜯어보지만, 오랜 지기같이 친근한 표정으로 살갑게 건네는 첫 마디는 대개 이렇다.
“공덕이 많아 보이는 언니!” “어떡해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시네요!” “도에 관심 있으세요?” 나는 짜증이 와락 나서 홱 지나쳐온다. 그로서는 뜻밖에 호의적으로 자기를 맞던 내가 돌변하는 것이 어이없는 일일 테다.
거리에서 일종의 그 ‘포교활동’을 하는 이들을 비교적 많이 맞닥뜨린다. 전에는 내가 유난히 인상이 좋아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그들을 다룬 테마 프로를 본 뒤로는 내가 만만하게 생긴 게 그 이유라는 걸 알게 됐다. 모자라고 허술하고 호락호락해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의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긴 하나보다. 언젠가 광화문에서 한 아가씨가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며, 골목에 세워둔 봉고차로 나를 이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엔 영어회화 테이프가 담긴 007 가방이 들려 있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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