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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통역'이 필요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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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통역'이 필요한 대통령

입력
2006.06.0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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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31 지방선거가 선거사상 유례없는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16개 광역단체장 중 열린우리당은 겨우 1명의 당선자를 냈고, 한나라당에선 12명이 당선했다. 정당별 득표에서도 열린우리당 21.2%, 한나라당 52.8%로 무려 31.6%나 차이가 났다.

그러면 승자는 누구인가. 이번 선거는 패자가 있을 뿐 진정한 승자가 없는 선거였다. 압승한 한나라당은 지방마다 당선의 기쁨을 나눴을 뿐 중앙당에선 박수소리가 담을 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 정도 압승이면 온 나라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환호가 넘쳐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다. 여당의 실정이 한나라당을 이기게 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 상식에 어긋나는 대통령의 선거 발언

굳이 따지자면 이번 선거의 승자는 표의 위력을 보여 준 유권자들이다. 그런데 유권자들도 행복하지 않다. 선거로 여당을 혼내준 건 백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여권이 어떻게 난국을 수습할지 암담하게 느껴진다. 그 암담함의 중심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지난 3년 동안 노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어느 정도 정리했던 사람들도 이번 선거결과를 받아들이는 대통령의 태도에 새삼 충격을 받았다. 여당의 존립기반을 뒤흔드는 선거 참패 앞에서 보인 노 대통령의 반응은 상식에 어긋났다.

대통령은 선거 다음날인 지난 1일 “민심의 흐름을 수용하겠다”는 미지근한 발언을 했다. 그리고 2일엔 각 부처 정책홍보관리관 회의에서 “한 두 번 선거로 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 것이 민주주의는 아니다.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제도나 의식, 문화, 정치구조 등의 수준이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책홍보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반발이 있었고 그래서 선거에 졌을 수도 있으나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수없이 들어온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선거 참패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이 “선거 패배가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다니 이 무슨 소린가. 선거 참패의 한 원인이 ‘정책홍보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라는 분석은 또 얼마나 엉뚱한가. 대통령의 발언은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했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과거에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진행됐다. 대통령 발언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대통령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에 나섰다. “공무원들이 의기소침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국가정책을 담당하는 여러분이 잘 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말이지 절대로 선거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라는 해명이 이어졌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왜 우리 대통령은 ‘통역’ 없이 국민과 대화할 수 없는가. 왜 번번이 상식에 어긋난 말을 하고, 그 말로 인한 논쟁을 부르고, 누군가 나서서 그 말을 통역하게 하는가. “대통령의 발언은 그런 뜻이 아니다. 진의가 왜곡됐다. 보수언론이 부풀려 전달하고 있다.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어달라”는 등의 해명을 앞으로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가.

선거 이후 실시된 많은 여론조사들은 일제히 이번 선거 결과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대통령을 지목하고 있다. 대통령은 어떻게든 국민의 마음을 얻어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 지지를 못얻는다면 동정이라도 얻어야 한다. 선거 참패 앞에서 진심으로 반성하면서 국민의 협조를 구했다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마저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

● 표현의 문제인가 본심의 문제인가

우리는 대통령의 이런 식의 발언들이 표현의 문제인지 본심의 문제인지 의심하고 있다. 가슴의 문제인지 머리의 문제인지 헷갈린다. 분명한 것은 통역이 필요한 화법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 대통령은 48.9%의 지지율을 얻어 당선됐다. 그 지지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왜 이탈했는가. 노 대통령은 발언하기 전에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장명수 본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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