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2008년부터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본격 시행된다. 자통법이 시행되면 현재 은행 보험 증권 선물 자산운용 신탁 등으로 세분돼 있는 금융시장 구조가 은행 보험 금융투자회사 등 3대 축으로 재편된다. 국내 금융산업의 ‘빅뱅(Big Bang)’이 될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증권업계는 자기자본 확대를 비롯해 새로운 금융상품 개발과 우수 인력 확보 등에 회사의 사활을 걸고 있다.
몸집을 키워야 산다.
우선 국내 증권사들의 관심은 ‘몸집 키우기’에 모아져 있다. 삼성 현대 대우 우리 대신 등 국내 5대 증권사의 규모는 국제적인 금융회사들과 경쟁하기는 역부족이다. 실제로 이들 증권사의 총자산을 모두 합쳐도 모건스탠리나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미국 5대 증권사 총자산의 0.8%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글로벌 경쟁의 승패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새로 탄생할 금융투자회사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이 같은 판단에 따른 국내 증권사들의 몸집 불리기는 치열하다. 현대증권은 발생주식 총수를 3억주에서 6억주로 늘려 향후 유상증자 교두보를 마련했다.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은 “1조5,000억원에서 3조원 선으로 자본 규모를 늘리는 것은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작일 뿐”이라며 “미국 유수 투자은행들의 아시아권 자본금 수준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증권도 이미 자기자본으로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적극적인 원본투자(PI)를 통한 수익 극대화로 2010년까지 ‘자기자본 5조원 확보’를 선언한 바 있다.
2010년 5대 증권사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는 NH투자증권은 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몸집을 키운 뒤, 농협중앙회와의 시너지를 통해 대형 금융투자회사로 거듭난다는 전략이다. 한국증권의 모기업인 한국투자금융지주 역시 최근 주총에서 상환과 전환우선주 발행 근거를 정관에 마련했다.
김형태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자통법 시행과 함께 증권업 선물업 자산운용업 등을 아우르기 위해 ‘범위의 경제’를 이루려는 합종연횡이 이뤄진 뒤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한 인수ㆍ합병(M&A)이 진행될 것”이라며 “경쟁을 통해 은행과 마찬가지로 증권쪽도 5~6개 대형사로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라
자통법의 핵심은 자본시장의 업무영역과 상품개발에 대한 제한을 푼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금융상품은 업종별 열거주의에 묶여 다양한 상품 개발 자체가 제한되며 외국계에 크게 뒤쳐졌다. 하지만 자통법이 시행되면 포괄주의로 전환돼 투자가치를 지닌 모든 상품을 개발.판매할 수 있게 된다. 즉 새로 출범할 금융투자회사는 기업금융(IB)과 자산관리, 직접투자 증권서비스 등 모든 금융투자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대형 증권사들은 다가올 무한경쟁 시대를 대비해 IB사업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즉 기업공개(IPO), 주식 및 채권 인수, M&A 등을 담당하는 조직을 확대하고 원본투자 사업을 잇따라 신설하고 있다.
대우증권은 지난 3월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IB사업을 기능 중심으로 개편하고 IB본부 내 PI담당 임원을 두고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등 IB분야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 미래에셋증권도 올해 초 IB 분야를 3개로 세분화하며 조직을 확대개편하고, M&A 본부장을 새로 영입하는 등 인력을 강화했다.
한화증권은 기존 IB영업본부 조직을 3개 팀에서 4개 팀으로 확대했고, 대신증권도 조직개편을 통해 IB업무 무문과 자산영업 부문, PI부문을 강화하는 등 IB조직을 확대했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사장은 “자통법 시행에 대비해 VIP 마케팅을 추진하고 IB 연계 상품 개발 등을 통해 다양한 상품 라인업을 구성하겠다”며 “ 상품 유가증권 투자 및 지분 출자 등 자기자본을 활용한 IB사업 영역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희정 기자 hjpark@hk.co.kr
■ 증권사 CEO에게서 듣는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국내 대형 증권사들의 한결 같은 목표다. 국내 대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이를 위해 위탁매매, 자산관리, 기업금융(IB), 해외진출 등 각사의 강점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2005 사업연도 영업이익 1위를 기록한 대우증권은 전통적인 증권사 업무영역인 주식 위탁매매업에 강점이 있다. 특히 손복조(55) 사장이 2004년 부임하면서 타 증권사들이 ‘자산관리’와 ‘기업금융’을 외칠 때 위탁매매업 강화를 선언, 지난해 주식시장 활황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 손 사장은 “증권업 본연의 업무이며 현재 가장 주요한 현금 창출원인 위탁매매를 기반으로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부문 등 미래 수익원의 경쟁력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찍부터 위탁매매보다는 자산관리업에 힘써 온 삼성증권은 고객 예탁자산이 100조5,000억원으로 국내 증권사 1위다. 배호원(56) 사장은 “풍부한 고객자산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혁신적 금융상품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금융상품 개발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떠오를 경우 이 같은 역량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 사장은 또 눈앞의 이익보다는 고객의 이익을 우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신뢰도를 높인 것을 중요한 성과이자 지속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우리투자증권은 국내 증권사 중 자기자본이 가장 많고 투자은행 업무의 핵심인 증권 인수(기업 자금조달) 부문에서 국내 증권사 중 1위를 기록 중이다. 우리투자증권 박종수(59) 사장은 국내 증권사 2위(67조2,000억원)인 예탁자산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장점까지 살려 사업 구조 자체를 선진 투자은행처럼 바꾸겠다고 밝혔다. 특히 소매부문 자산을 올해 안에 전년 대비 10조원 증가한 45조원으로 늘리는 등 자산규모 확대에 힘써, 2010년까지 국제 경쟁력을 가진 IB로 발전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증권사 중 가장 많은 점포(130개)를 바탕으로 대우증권과 위탁매매 점유율 선두를 다투는 현대증권도 해외 IB 벤치마킹 전담조직인 ‘이노베이션팀’을 신설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대증권 김지완(60) 사장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후 도래할 증권업계 구조조정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면서 이를 위해 자기자본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또 “국내 최초로 중국 부실채권 투자에 성공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해외 사업부문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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