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재앙이 밀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1.08명)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반면, 고령화 진행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머지않아 65세 이상 노인이 총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도래할 전망이다. 저출산ㆍ고령화는 정부 대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메가톤급 충격이다. 기업과 개인도 저출산ㆍ고령화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대응요령을 깨쳐야 한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은 국내외 연구기관의 보고서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한 자녀를 둔 30대 맞벌이 가정이 부딪치게 될 미래를 ‘가상 시나리오’로 꾸며봤다. 이 부부의 미래상을 따라가며 저출산ㆍ고령화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짚어보자.
2015년 6월아들 16세·부부 44세
저출산의 빛과 그림자
고교 진학을 앞둔 시몬이의 장래 걱정에 요한씨 부부의 대화가 유난히 많아졌다. 정부의 이공계 살리기 프로젝트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공대나 자연대 기피현상이 여전하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순수과학을 좋아하는 아들의 고집을 꺾기 힘들어서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대입 경쟁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다행스럽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600만명을 넘어선 반면, 시몬이가 경쟁할 학생들의 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요한씨 부부가 경험했던 ‘입시지옥’은 이미 옛날 얘기가 됐다. 수연씨가 남편에게 확인하듯 물어본다. “노인들이 많아진 대신에 아이들이 줄어 앞으로 시몬이가 살아가는 세상이 치열한 경쟁을 필요로 하지는 않겠네요?”
저출산으로 학생 급감… 입시·취업경쟁 사라져
1963년 이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시기이다. 한해 출생아 수 100만명 시절에 태어난 이들의 일자리를 저출산 시대(40만명)에 태어난 시몬이와 같은 아이들이 메우면서 자연스럽게 취업률이 올라가고,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학령인구 추정을 보면 고교 1학년생은 2006년 62만9,234명에서 2015년 62만72명으로 크게 줄고, 고 3의 경우 2006년 60만3,965명에서 2022년 47만8,115명으로 뚝 떨어진다. 그나마 이 무렵까지는 시몬이 또래가 고령사회의 덕을 보는 셈이다. 다만 노동시장이 그만큼 ‘소수정예’가 되기 때문에 고임금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 위해선 지금과 다른 형태의 경쟁 스트레스가 예상된다. 이런 저출산의 빛은 사회비용 급증과 노동력 부족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2030년 12월(아들 31세. 부부 59세)
사회화합 위협하는 고령사회
결혼 32년차인 최씨 부부는 남들보다 먼저 집을 장만한 덕분에 꾸준한 펀드투자와 안정적인 금융상품 운용으로 노후대비 자금을 마련하는 데 비교적 성공했다. 하지만 주변 친척이나 친구들 중에는 한정된 자원을 자녀교육에 ‘올인’ 하느라 노후대비를 소홀히 한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큰 기대를 했다가 후회를 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시몬씨는 월급여의 거의 절반을 세금과 사회보험으로 내놓고 있다. 정부가 연금고갈을 막고 노년층의 의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북유럽 모델을 따라간 결과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 젊은 세대의 보조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왜 우리 세대가 부담을 다 떠안아야 하는지 불만이 일기도 한다. 최씨 부부도 연일 신문에 보도되는 학생들의 연금폐지 요구 시위를 보며 ‘이러면서까지 돈을 받고 살아야 하는지’ 씁쓸하기만 하다.
노인 1,000만명 시대… 젊은세대엔 부양 고통
지금의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2005년에 생산가능인구 8명 당 1명의 노인을 부양하던 비율이 2020년엔 4명 당 1명으로, 2050년에는 무려 1대 1로 높아진다. 고령화는 또한 의료비 지출을 끌어올려 건강보험재정의 악화를 초래할 게 분명하다. 고령인구 1인 당 의료비 지출은 비고령 인구의 3~4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진료비는 2004년 22조5,060억원에서 2030년엔 81조원(2004년 물가기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연금 수혜대상인 노인인구는 1,000만명 고지에 이르는 반면, 이들을 먹여 살리는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기 때문에 결국 짐이 무거워진 젊은 세대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40년 6월(아들 41세. 부부 69세)
결혼생활과 국가 노동력 경쟁
시몬씨는 34세에 가정을 이뤄 7살 짜리 아이의 아빠가 됐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일찍 결혼한 셈이다. 아이를 낳은 덕분에 직장에서 특별 보너스도 받고 있다. 10년 전부터 500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자녀가 있는 가장에겐 정부와 기업이 절반씩 부담하는 육아 보너스가 지급된다. 하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1.0명 언저리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 시몬씨가 근무하는 회사는 요즘 외국인 노동자들을 스카우트 하는 문제로 고심 중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블루칼라 직종은 갬?일부 기술직과 사무직까지 영어 구사가 가능한 동남아시아인을 고용하는 게 유행이 됐다. 어느새 회사의 중견관리자로 올라선 시몬씨는 “부모 세대에서 시작된 저출산 기조 탓에 우리나라가 힘없는 나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출산 고통 본격화… 외국인 고용 유행으로
수 십년 동안 지속된 저출산 사회가 만들어낸 암운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생산가능인구가 1% 늘어날 때 1인 당 실질 GDP가 0.08%포인트 증가하는 반면, 노인인구가 1% 늘어나면 GDP가 0.041%포인트 감소한다고 예측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이 2020년 10.9%에서 2030년 24.1%, 2050년 37.3%로 치솟으면 평균 경제성장률은 2021~2030년 3%대, 2031~2040년 2%대, 2041~2050년 1%대로 급락할 수밖에 없다. 노인인구가 많아지면 저축, 소비, 투자가 위축되고 국가재정도 휘청거리게 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사회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50년 3월(아들 51세. 부부 79세)
황혼의 그들은 어디로
80세 생일을 1년 앞둔 최씨 부부는 아침 일찍 국민연금관리공단을 방문했다. TV모니터를 통해 연금공단 직원과의 화상대화가 금방 연결됐지만, 나이 탓인지 이제는 삭막한 디지털 민원이 지겹게만 느껴진다. 최씨 부부는 직장생활 이후 55년간 부어온 국민연금을 일시불로 받기로 했다. 첫 직장을 은퇴한 뒤 20여년간 기업의 컨설턴트로 생활비를 벌어오던 이들 부부가 공식적으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최씨 부부는 연금공단에서 자신의 계좌로 수령액이 이체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 돈으로 아들 내외가 살고 있는 경기 고양시 인근 실버타운에 입주할 계획이다. 최씨 부부는 이곳에서 본격적인 ‘인생 3모작’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들이 소개해준 라이프코치의 도움을 받아 평생 갈고 닦은 경륜을 새롭게 펼쳐볼 생각이다.
평균 기대수명 90세… 70세 넘어도 사회생활
초고령사회인 2050년이 되면 ‘황혼기’의 개념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 때의 노년층은 더 이상 ‘얼마나 오래 사느냐’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평균 기대수명이 최소한 90살 정도로 예상되는데다 3명 중 1명이 대학 이상의 학력을 보유할 정도로 교육을 많이 받은 세대인 탓이다. 최씨 부부도 지금으로 치면 이제 막 환갑을 넘기는 정도의 ‘정정한 젊은 노인’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노인 계층의 능력과 경험을 사회에 오랫동안 전수하게 하는 것이 국가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도 지금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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