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적수가 없다. 한국이 세계 조선업계를 싹쓸이 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한국은 수주량 기준으로 2000년, 건조량 기준으로 2003년 일본을 완전히 따돌리며 1위로 올라선 뒤 지금까지 확고부동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올해 1분기 전세계 선박 수주 분 중 절반 이상을 독식했다. 영국의 조선ㆍ해운 시황 전문회사인 클락슨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1~3월 전세계 선박 수주량 1,13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의 54%인 610만CGT를 수주했다. 뒤를 이은 중국(250만CGT), 유럽(100만CGT), 일본(80만CGT)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기업별로 보면 현대중공업그룹(미포조선ㆍ삼호중공업 포함)은 1분기에 50억5,000만 달러를 수주, 올해 수주 목표(125억 달러)의 40%를 넘어섰다. 대우조선해양도 연간 목표(100억 달러)의 45%인 45억 달러, 삼성중공업도 목표(77억 달러)의 44%인 34억 달러를 수주했다.
이처럼 잘 나가는 비결이 뭘까. 지난 2년간 총 10척(100만톤)의 선박 건조기록을 세운 현대중공업은 2004년 10월 세계 최초로 도크 없이 선박을 만들어 바다로 진수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 노보십사에서 수주한 10만5,000톤급 원유운반선을 육상에서 건조한 뒤 바지선을 이용해 바다로 안전하게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배를 드라이 도크 안에서 만든 뒤 물을 채워 바다로 내보낸다는 조선업계의 기존 통념을 깬 쾌거였다. 이로써 현대중공업은 도크의 제한에서 벗어나 건조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현대중공업 오병욱 해양사업본부장은 “앞으로 매년 16척의 선박을 도크 없이 건조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작업장 추가 건설과 크레인 레일 연장 등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이에 못 지 않다. 두 회사는 블록의 대형화를 통해 배를 짓는 도크의 효율성을 끌어올렸다. 10만톤급 유조선 개당 200톤짜리 블록 100여개를 도크 안에서 용접ㆍ조립하던 방식에서 탈피, 2,000톤짜리 대형 블록 10여개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바꿔 배가 도크에 머무르는 기간을 석달에서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독창적 기술 뿐만이 아니라 경쟁국보다 앞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혜안’도 비결로 꼽힌다. 국내 조선업계는 1990년대 초 선박경기의 불황을 예상하고 설비투자를 주저하던 당시 1위의 일본이나 유럽 조선업계와 달리, 90년대 후반 호황기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 아래 설비투자를 늘렸다. 이 같은 예측이 적중, 일본을 제치고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원동력이 됐다.
현재 국내 조선업계는 이 같은 우위를 지키기 위해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비롯, LNG선 및 원유시추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에 힘을 모으고 있다. 전 세계 선박의 약 15%를 만드는 현대중공업은 8,000TEU(I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를 적재할 수 있는 크기)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수주 잔량만 80여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현재 전세계 발주 물량의 약 40%에 해당한다. 대우조선은 고유가에 따라 주문이 늘고 있는 LNG선을 올해 9척 건조한데 이어 2009년까지 17척으로 건조 능력을 확충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전세계에서 발주된 17척의 원유개발선(드릴십) 가운데 11척을 수주, 이 분야 점유율 65%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저가 수주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세가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끊임없는 신공법 개발을 통해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며 독보적 기술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겸 조선공업협회 회장은 “2020년까지 한국은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 조선업계 CEO에게서 듣는다
“세계 최대인 1,300여명의 설계인력과 600여명의 연구진이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민계식 부회장은 최고의 경쟁력으로 세계 조선업계를 리드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선주들의 다양한 요구에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현대중공업이 세계 선박 건조량의 약 15%를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이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은 일감도 이미 3년치 이상을 확보해 놓고 있다.
미 MIT 공학박사 출신으로 15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민 부회장은 ‘기술 제일주의 풍토’를 앞장 서서 이끌고 있다. “기술이 없으면 망하고, 오로지 일등상품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대중공업이 조선 및 발전 부문 뿐 아니라 최근 들어 태양광과 풍력 설비 등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도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하는 것도 그의 독려 영향이 절대적이다. 민 부회장은 앞으로 해양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 저장 설비와 765㎸ 등 송ㆍ배전용 중전기기 관련 사업에도 적극 진출할 생각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남상태 사장은 핵심사업 역량 강화를 통한 초일류 기업을 지향한다. 기획ㆍ재무 분야에 정통한 그는 유가 상승으로 천연가스의 중요성이 높아져 액화천연가스 운반선(LNG선)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2008년까지 LNG선의 건조량을 현재 8척에서 15척으로 늘리기로 했다. 특히 대형 LNG선 건조 비중을 50% 이상 늘리고, 고부가가치 선박 전문 건조 조선소의 이미지를 확실히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들어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LNG선 12척을 포함, 총 28척을 수주해 59억1,000만 달러 상당의 영업실적을 올렸다. 남 사장은 “올해 수주 목표인 100억 달러를 달성할 수 있을 같다”고 자신한다.
삼성중공업 김징완 사장은 2001년 취임한 후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모토 아래 직접 발품을 팔며 해외 수주활동에 나선 CEO로 유명하다. 그 동안 항공기 탑승 누적 마일리지만 무려 200만 마일에 달할 정도로 부지런히 영업 전선을 뛰어 다녔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1974년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인 77억 달러를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3월 스웨덴 스테나사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심해 유전개발 설비인 드릴십 한 척을 사상 최고가인 5억5,000만 달러에 수주했다. 이로써 그 동안 전세계에서 발주된 17척의 드릴십 가운데 11척을 수주, 시장 점유율 65%를 기록했다. “드릴십 및 해상 플랫폼 사업과 함께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특수선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 더욱 강한 삼성중공업으로 거듭 나겠다”는 게 그의 야심찬 계획이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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