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장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음악회 사상 최초로 온라인게임 장면이 영화처럼 상영되는 가운데 게임의 배경음악이 그 자리에서 연주된 것이다.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적 게임쇼 E3에서 여러 상을 휩쓴 게임 ‘아이온’의 화려한 그래픽과 웅장하고 신비로운 선율이 어우러진 이 연주는 수많은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효과음’으로만 치부되던 게임 음악이 하나의 음악 장르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실험을 감행한 이는 바로 ‘아시아의 야니’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양방언(45ㆍ사진)씨. 그는 일본, 중국 등지에서 프로듀서ㆍ작곡가ㆍ뮤지션으로 활동해왔으며, 서양음악과 동양음악, 음악과 영상을 넘나드는 대표적인 크로스오버 뮤지션이다.
그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공식음악 ‘프론티어’, MBC 특별기획드라마 ‘상도’의 메인 타이틀로 한국에 알려졌다. 올해에는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 ‘아이온’의 음악을 발표했다. 6일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공항에서 그를 만났다.
일본 태생으로 범아시아적인 음악을 만들고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 양씨는 그러나 ‘한국인’이다. 그는 1960년 도쿄에서 제주도 출신인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는 교포 1세로서 많은 한을 가지고 있었고, 나도 주변에서 조센징이라고 손가락질 받기도 했지만 ‘양방언’이라는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니혼의과대학을 나와서 약 1년간 의사생활을 한 것도 가족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사회에서 많은 설움을 겪었던 아버지는 5남매 모두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했던 것.
때문에 여섯 살부터 악기를 다루기 시작해 중ㆍ고등학교에서도 밴드활동을 했던 그는 일단 아버지의 뜻대로 의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끝내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음악을 하겠다고 말해 집에서 쫓겨난 이후 약 20년이 넘는 음악 외길을 걷고 있다.
그는 “출신이나 장르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만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갇히지 않고 순간의 이끌림을 포착해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능력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새로운 악기, 컴퓨터 기술, 애니메이션, 게임 등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열린 음악은 그에게 새로운 만남도 선사했다. 디자이너 장광효씨는 2004년 그의 음악들 들은 후 한국공연 때마다 의상을 협찬하고 있고, 임권택 감독은 “드라마 ‘상도’에서 국악과 현대악기가 충돌 없이 잘 매치됐다”며 그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2007년 개봉 예정)의 음악을 맡겼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 “이제야 내 음악의 입구에 온 것 같다”고 말한 양방언. 쉼 는 가로지르기와 넘나들기를 통한 그의 음악의 진화는 어디까지 계속될지 음악 애호가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