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 3세, 폴란드의 스타니슬라프 2세…. 18세기 후반 중ㆍ동부 유럽에서 절대주의 체제를 확립한 이들은 영국에서 발아되고 프랑스에서 개화한 계몽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이른바 ‘계몽군주(Enlightened Despot)’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서유럽에 비해 봉건사회의 해체가 늦어 시민계급의 성장이 더뎠던 나라를 지배했던 이들은 국민의 미망(迷妄)과 무지를 깨우치는 ‘초계급적 철학자’를 자처하며 위로부터의 근대적 개혁을 단행했다.
▦국민 교화의 기치를 치켜든 이들은 농업을 개량하고 상공업을 진흥하는 한편 사법제도 개선, 법전 편찬, 고문 금지 등의 정치ㆍ경제ㆍ교육 제도 혁신에 많은 힘을 쏟았다.
그러나 계몽사상의 이상에 도취해 역사적ㆍ철학적 소명을 받은 선지자인 양 군림했던 이들은 시민사회가 성숙함에 따라 전제군주의 한계와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봉건주의와 자본주의의 경계에서 제한된 역할을 했던 절대주의 왕권의 존립이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위협받게 되자 ‘시혜적 계몽’의 가면을 벗고 반민주성과 억압성을 노골적으로 표출해 몰락을 자초한 것이다.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 요인을 따지는 많은 설명과 분석 중에서 ‘계몽군주론’이 특히 눈에 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역할을 ‘계몽군주’로 여겨 국민들을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으로 하는 바람에 민심이 여권에 등을 돌렸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으로선 억울할지 모르나 본인이나 주변의 언행을 보면 무리한 비유는 아니다.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과 이 시기의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인식과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계시는데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시대의 문화에 빠져 있다”는 측근의 말은 대표적 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같은 대통령의 계몽적 소명의식이 계층 지역 세대를 가리지 않는 당대의 민심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했다는 점이다. 과거 계몽군주의 개혁이 관념적이고 시혜적으로 흘러 신흥 계급에 의해 배척됐던 것을 연상케 한다.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를 ‘계몽적 순교자’로 즐겨 인용하면서도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정체불명의 실용주의를 들이대는 노 대통령에게서 국민들이 희망의 싹을 찾지 못한 탓이다. 높은 곳에서 역사와 대화하며 표면의 파도보다 저변의 조류를 탐구한다는 대통령이야말로 과거와 허공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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