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해피선데이’의 ‘날아라 슛돌이’는 ‘이상한’ 축구 프로그램이었다. 축구 시합이 주 내용이지만 승패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패스조차 할 줄 모르던 아이들이 조금씩 축구를 배워나가고, 팀이라는 공동체의 개념을 익히며 우정을 다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최대의 재미였다.
그러나 요즘은 ‘슛돌이’를 그렇게 마음 편히 볼 수 없다. 독일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면서 강한 경쟁구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독일 원정’에 나서 해외 축구팀과 시합하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주한 프랑스 유소년 축구팀 등과 ‘꼬맹이 월드컵’을 한다. 아이들은 마치 성인 국가대표팀을 대신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슛돌이들처럼 대표팀도 선전하길 바란다”라는 해설자의 말이 따라붙는다. 그러다 보니 덩달아 슛돌이들에게 ‘재미’보다 ‘승리’를 요구하는 시청자도 생겨난다. 심지어 아이들의 플레이에 별점을 매기며 저조한 선수를 비난하는 네티즌도 있다.
진짜 월드컵 관련 방송으로 눈을 돌리면 그 정도는 더하다. 경기 몇 시간 전부터 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연예인들의 응원쇼가 펼쳐지는 등 모든 프로그램에서 오직 ‘승리’만을 외친다. SBS ‘일요일이 좋다’의 ‘X맨’은 연예인들이 독일 클럽 축구팀과 페널티 킥 시합을 하며 국가 대항 대리전을 치르고, KBS2 ‘개그콘서트’는 얼마 전 평가전에서 저조한 플레이를 보인 설기현 선수를 비하하는 듯한 코미디로 빈축을 샀다.
모두 대표팀의 승리에만 집착할 뿐 축구, 혹은 월드컵이라는 축제의 즐거움이나 그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시청자들에게는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물론 월드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지대하고, 모두 대표팀의 승리를 원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못지않게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즐거움을 원한다. 2002년 월드컵 때 ‘오 필승 코리아’나 ‘대~한민국’같은 구호가 응원을 주도했던 데 반해 올해는 ‘애국가’를 이용한 응원가나 ‘4,800만의 붉은악마’같은 CF 카피처럼 애국심을 자극하는 응원 상품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대신 모든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춤출 수 있는 ‘꼭짓점 댄스’가 가장 큰 인기를 모았다.
시청률과 광고수익에 목을 맨 방송사들에 월드컵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까지 배려하는 방송을 기대하진 않겠다. 하지만 최소한 월드컵에 관심 있는 시청자들에게 월드컵을 ‘즐길 권리’는 보장해줘야 하지 않을까. 대표팀의 승패에 따라 모든 것이 뒤바뀌는 요즘 방송사들의 행태는 수준 낮은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객원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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