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타ㆍ다테나시를 걸고 말하노니,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말라."
일본 중세 전국시대 가이와 시나노 쓰루가 지역의 영주로 뛰어난 지략과 군략으로 당대 최고의 무장세력을 형성했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그는 최강의 기마군단을 거느리고 무수한 전쟁을 벌여 영토를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젊은 시절 혈기를 바탕으로 "미하타ㆍ다테나시를 두고 맹세한다"고 선언하고, 전쟁에 나섰다가 참패하기도 했다.
미하타란 둥근 태양이 그려진 깃발이고, 다테나시는 먼 조상인 신라사부로 요시미쓰가 착용했던 갑옷으로 둘 다 다케다가에 소중히 전해오는 가보였다. 영주가 이 가보를 걸고 맹세한 것은 영주 자신조차도 거둬들일 수 없다는 게 불문율이었다. 영주의 정책이나 전략이 분명히 잘못됐는데도 불구, 이 가보를 두고 선언하면 부하 장수들의 반대 의견은 묵살됐다.
신겐은 한때 적보다 많은 수적 우세만을 믿고 충분한 대책없이 전쟁을 벌이다가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군사인 야마모토 간스케의 간언을 받아들였다. 간스케는 신겐에게 "미하타ㆍ다테나시에 맹세코라는 서언(誓言)을 저에게 맡겨주시옵소서"라고 요청했다. 전쟁을 하다보면 상황이 무수히 변하는데, 영주가 독선에 빠져 애초의 전략을 고수하다가는 참패를 당하고, 나라 자체도 망한다는 게 그의 진언의 골자였다.
신겐은 미야꼬(일본 천황이 살던 곳)를 차지하기위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반다케다 연합전선을 형성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미가와 땅을 침공하던 중 병사하면서 천하통일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의 아들인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賴)는 아버지의 재능에 한참 못미치면서도 충신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미하타ㆍ다테나시를 두고 다짐을 남발하며 무리한 전쟁을 벌였다.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나라경제도 파탄났다. 신겐 시절부터 무적을 자랑했던 다케다 군단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의 나가시노성 공방전에서 참패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5ㆍ31' 지방선거 참패 원인과 해법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여당간에 공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선 국민들로부터 사실상 탄핵을 받았으므로, 민심이반을 가져온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참패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국민들의 반감이 큰 세금폭탄식 부동산정책 등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당-청간에 갈등이 예상되고 있다. 외통수의 길을 걷고 있는 청와대의 행태는 가쓰요리가 충신들의 간언을 경청하지 않은채 독선과 아집에 빠져 쇠락의 길을 걸은 것과 유사하다.
한번 수립된 경제정책은 일관성을 갖고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청와대와 386개혁세력들이 집값을 잡기는커녕 반시장적이고, 서민ㆍ중산층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동산정책을 쏟아냈다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면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걱정되는 것은 노 대통령 특유의 '나만이 옳다'는 마이웨이식 성격을 감안할 때, 부동산 및 세제정책이 더욱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현행 무더기 규제 및 중과세 위주의 부동산정책이 지속될 경우 불황으로 싸늘한 윗목에서 고통받는 서민ㆍ중산층의 삶은 갈수록 고단해질 뿐이다.
이의춘 산업부장 직대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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