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미궁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경기향방도 ‘시계(視界)제로’이고, 경제정책 방향 역시 여당의 선거참패 이후 안개 속으로 접어들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상황은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 수도 있어, 한국경제엔 자칫 정부도 기업도 숨죽인 채 관망만 하는 ‘잃어버린 1년 반’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궁 1. 경기
하반기에도 경기회복세가 이어질지, 아니면 하락국면으로 반전될지 오리무중이다. 경기향방 자체가 유가와 환율 등 통제불능의 요소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론 상승기조 지속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락압력이 작동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산 소비 출하 재고 등 부문별 움직임은 여전히 확장국면적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올해는 참여정부 출범이후 처음으로 잠재성장률 수준의 회복이 이뤄지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 쪽에선 정점통과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하반기 3%대 ‘경(硬)착륙’가능성을 점치는 곳도 있다. 2004년2월~2005년4월 이미 ‘더블 딥(이중침체:경기회복이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꺾이는 상황)’을 경험했던 터라, “이젠 트리플 딥(Triple Dip)이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문제는 경기가 꺾이더라도 마땅한 대응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우선은 통화(금리)정책이 움직여줘야 하지만, 부동산 버블에 발목이 잡혀 있어 금리인하 대처가 불가능한 형편이다. 수출에서 숨통을 터주려면 환율상승을 유도해야겠지만, 미국의 ‘약(弱)달러’공세는 헨리 폴슨 신임 재무장관(지명자) 주도하에 더 집요해 것 같다. 재정정책은 이미 경기중립적으로 편성된 탓에, 당장은 기대할 것이 없다. 결국 경기위축에 대응할 수 있는 주요 거시정책 수단들이 모조리 이런저런 ‘덫’에 걸려있는 상황이다.
미궁 2. 부동산
지방선거에 참패한 열린우리당이 이반된 민심 복귀의 돌파구를 부동산ㆍ세금정책의 완화쪽으로 설정함에 따라 부동산 정책기조를 둘러싼 당ㆍ정(청)간 갈등은 불가피해졌다.
우리당이 검토중인 부동산 관련 세금 완화의 골자는 ▦1가구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완화 ▦취득ㆍ등록세율 인하 ▦양도세 부담경감 등이다. 이 가운데 취득ㆍ등록세율 인하는 지방세수 문제가 걸려 있지만 ‘보유세 강화-거래세 완화’의 기본 취지와도 부합해 일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1주택자 종부세 완화나 양도세 인하는 정부로선 수용불가의 카드다. 정부 당국자는 “1주택자를 종부세 대상에서 빼준다면 4억원 짜리 두 채를 갖고 있는 사람이 10억원 짜리 한 채를 갖고 있는 사람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고 말했다.
청와대나 정부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당의 요구를 수용하자니 ‘정부가 밀린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져줘 집값에 다시 불을 붙일 것 같고, 그렇다고 거부하자니 ‘좀 살아보려고 애쓰는데 해도 너무 한다’는 당의 원성을 들을 수 밖에 없다.
당ㆍ정간 예고된 갈등 속에 부동산 시장은 일단 관망세이지만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한 중개업자는 “부동산정책 방향이 혼미해진 만큼 매물도 안 나오고 거래도 끊어질 공산이 크다”며 “그러나 여당이 민심수습책으로 제기한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와 세금 경감이 가시화할 경우 부동산시장이 다시 과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궁 3. 각종 입법
지방선거 참패 여파로 국회내 여당의 리더십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여당의 주도권이 없으면 입법은 공전되고, 각종 민생정책 추진도 탄력을 잃게 된다.
6월 임시국회부터 가을 정기국회까지 처리해야 할 민생입법은 한두 개가 아니다. 이 중 국민연금법, 비정규직법, 세법(세제개혁), 저출산 고령화 대책관련 입법 등은 여당의 강력한 리더십이 뒷받침되어야 법안통과가 가능한데, 현재의 우리당에겐 그럴 능력이 없어 보인다. 아울러 재경부가 추진중인 중장기 세제개편 역시, 전반적으로 세부담 증가를 수반하는 내용이라 지금 분위기라면 여당으로부터 먼저 반대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국민부담과 이어지는 예민한 정책들은 빛도 보지 못한 채, 아예 차기 정부로 넘어가는 상황도 그려 볼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한나라당이 싹쓸이함에 따라 중앙-지방정부간 불협화음도 예상된다. 지자체들의 재산세 감면 러시와 관련, 정부는 “부동산정책효과를 반감하고 지자체간 세부담 불균형을 부추긴다”며 지방세법 개정 등을 통해 제동을 걸려 하고 있지만, 지자체 판세와 국회 사정상 이 역시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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