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협회 훌리오 그론도나 회장은 임원들을 데리고 안데스 산맥 속 작은 마을인 틸카라를 급거 방문했다고 AP통신이 4일 보도했다. 그론도나 회장의 산행은 20년 묵은 약속을 지키고 대표팀에게 내려진 저주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
틸카라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을 앞두고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이 고산 적응 훈련을 했던 곳이다. 당시 카를로스 빌라도 감독은 이 마을의 신전에서 팀의 우승을 빌며 “소원을 들어주면 돌아와 감사 기도를 하겠다”고 맹세했다.
기도처럼 아르헨티나는 독일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그러나 최근 이 마을의 촌장은 “빌라도 감독이 아직껏 신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대표팀에게는 저주가 걸려 있다”고 밝혔다.
‘틸카라의 저주’ 때문인지 아르헨티나는 우승과 거리가 멀어졌다. 급기야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에는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와 ‘죽음의 조’인 F조에 배속돼 탈락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지도부가 신전 앞에서 간곡하게 기도한 까닭이다.
독일월드컵 개막이 다가오면서 상대팀에게 저주를 걸거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선ㆍ후진국 팀을 가리지 않는다. 마치 대회 전체가 주술(呪術)에 묶인 듯한 모습이다.
한국에 주술을 걸 것이라고 공언했던 토고에서는 조만간 부두교의 대사제가 직접 독일로 향할 예정이다. 대사제는 경기장에서 전통 사제복을 입고 주술의식을 거행할 것이라면서 경기 시작 이틀 전에는 정확한 스코어까지 알아 맞추겠다고 호언했다. 그는 “1월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토고가 3전 전패로 탈락한 것은 부두교의 힘을 무시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는 선조들의 영혼의 힘으로 프랑스와 한국을 꺾고 16강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5일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www.fifa.com)에 따르면 스페인의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최근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 라울과 ‘노란 티셔츠’를 두고 한판 설전을 벌였다. 훈련장에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온 라울에게 “당장 벗어라”고 호통을 친 것이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중세 유럽의 신비주의 유대교인 카발라교의 독실한 신자다. 카발라교는 마돈나 등 미국의 할리우드 배우들이 많이 믿는 종교로 노란색을 불길한 색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프랑스의 레몽 도메네크 감독은 출전 엔트리를 짤 때 반드시 선수의 별자리를 본다. 점성술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도메네크 감독은 “전갈자리는 서로 죽을 때까지 싸워야 싸움이 끝난다”며 최종 엔트리에서 로베르 피레와 요한 미쿠를 제외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슬람국가인 이란도 같은 D조에 속한 멕시코의 주술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란 축구협회 문화 고문인 알리 포우르는 “멕시코는 심리전의 대가”라며 “멕시코의 주술이 먹혀 이란의 핵심 선수들이 다치지 않기 위해 비책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선수들이 갈수록 미신에 몰입하는 현상은 축구가 급속히 과학화하는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것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전문가들은 “축구의 판세가 평준화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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