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이 넘은 노병은 보청기를 끼고도 잘 듣지 못했다. 한국전쟁 당시 양구 전투에서 적의 포탄공격을 받아 입은 상처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터지던 해 입대한 뒤 30여 차례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무공훈장 수훈자란 사실도 모른 채 전역한 천영길(82)씨. 육군은 뒤늦게 노병의 전공을 확인하고 올해 4월 화랑무공훈장을 전달했다. 호국(護國)의 상처를 평생의 굴레로 안고 살았던 노병은 빛바랜 훈장이 야속했던지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킨 전쟁영웅들의 무공훈장이 아직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육군은 전공을 세운 장병 16만2,000여명에게 훈장 ‘가수여증’과 ‘약장’을 발부했지만 실제 발급된 훈장은 7만3,000여개이다. 육군은 전후 8차례 무공훈장 찾아주기 운동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약 9만장의 훈장증서가 주인을 잃은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호국의 징표는 소용돌이치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대부분 주인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천씨처럼 훈장증이 나온 줄 모르고 전역하거나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된 사이에 훈장증이 나온 경우가 적지 않다.
공병대 하사로 전쟁에 나갔던 김영환(75)씨는 전후방 부대 교대과정에서 세운 전공으로 훈장수여자가 됐지만 척추부상을 입고 후방병원에서 전역하는 바람에 반세기 만인 지난달 뒤늦게 훈장을 찾을 수 있었다. 훈장가수여증을 분실하는 바람에 전공을 입증할 방법이 없어 훈장을 찾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공훈장은 주인공보다 유족에게 전달될 때가 더 많아지고 있다. 고 차정석씨는 한국전쟁 당시 1103야전공병단에 배치돼 수 차례 전투에서 세운 공로로 무공훈장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이 사실을 모른 채 평생을 살다 지난해 운명을 달리했다. 올해 3월 뒤늦게 부친의 무공훈장을 받아 든 아들 차용진(61)씨는 “조금이라도 일찍 찾았더라면 아버님 영전에 영광을 바치는 불효는 없었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육군 관계자는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가 유족도 없이 숨진 경우처럼 무공훈장의 주인공이 전사한 때는 훈장의 주인을 찾아주기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공훈장의 주인공이 전사했더라도 유족들이 관련사실을 입증하면 훈장뿐 아니라 국가유공자로서 일정액의 보훈연금도 받을 수 있다. 육군 무공훈장 문의(02-505-1622)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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