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진도 다시래기'는 전남 진도지방에 전승돼온 상가(喪家)놀이다. 돌연 초상집에 들이닥친 연희(演戱)패가 "이게 뉘 집 경사인고?…한바탕 놀다나 가세"하며 생판 분위기 파악 못한 소리를 하고는 흥겨운 사물 리듬에 맞춰 노래 춤 재담을 밤새 질펀하게 펼쳐 보이는 형식이다. 초상집에 놀이판이란 것부터 가당치 않은데 연희 내용은 더 가관이다.
탈놀이에서처럼 파계승이 등장, 남편 집 비운 새 아낙과 통정하고는 술 취해 돌아온 남편과 옥신각신 아이 아비임을 다툰다. 걸쭉한 육담에 문상객은 물론 상주조차 슬픔을 잊고 자지러진다.
▦시인 김명인이 '바닷가의 장례'에서 '우리에게 장례 말고 더 큰 축제가 일찍이 있었던가'라고 읊었듯 실제로 시골의 초상은 이웃, 친지 모두가 어우러지는 잔치와도 같았다. 상가는 조용해서도, 상주를 마냥 슬픔에 잠겨 있도록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진도 다시래기처럼 가무(歌舞)를 수반한 상가놀이는 그래서 어디에나 있었다.
상가 풍경을 담은 이청준의 소설은 제목부터가 '축제'이고 박철수의 영화 '학생부군신위' 또한 마찬가지 분위기다. 요즘 상가에서 밤새 떠들썩하게 술을 나누고 고스톱판까지 벌이는 것은 이러한 전통의 현대적 변형이다.
▦독특한 상가문화는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칼로 자르듯 구분치 않는 한국적 사후관(死後觀)과 관련이 있다. 우리에게 망자(亡者)의 이미지는 죽는 순간 소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별의 아쉬움에 자주 뒤돌아보며 휘적휘적 저 먼 길을 떠나는 모습이다.
그래서 노잣돈도 놓고 혹 발걸음을 돌리길 바라는 초혼(招魂)도 한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상복, 상장(喪章)에 종말을 뜻하는 검은 천 대신 물들이지 않은 무명이나 삼베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망자는 그렇게 매정하게 보내 인연을 끊어 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장례식장 운영방침 전환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이 병원은 10년 전부터 조문객들의 술·담배ㆍ도박·밤샘을 금지하고 식사도 쿠폰으로 공용식당에서 해결토록 하고 있다. 기독교적 입장이 반영된 이 '선구적' 조치를 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마 더 많은 이들은 엉덩이 붙일 곳조차 변변치 않은 삭막함이 영 못마땅했을 것이다.
더욱이 상주들은 본의 아니게 조위금만 달랑 챙기고 대접도 제대로 않는 야박한 인간으로 비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 문제는 아무래도 종교보다는 문화적 시각에서 다루는 게 옳은 것 같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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