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전과는 숨기고 살 수 있어도 이 얼굴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강도치사죄로 경북 청송교도소에 수감돼 9년째 복역하고 있는 김명수(37ㆍ가명)씨는 1년 앞으로 다가온 출소를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담장 너머의 바깥세상이 두려워서다.
# “사람답게 살고싶은데… 세상의 놀림 두려움 앞서”
날 때부터 오른쪽 목에 커다란 혹을 달고 살았던 김씨는 7세 때 혹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얼굴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얼굴의 코 아래쪽 뼈가 오른쪽으로만 자랐다. 왼쪽 뺨과 턱이 함몰된 듯 변했고 입도 얼굴 왼쪽으로 돌아갔다. 왼쪽 볼에 붙은 입 때문에 숟가락도 왼손으로 뜬다.
“중학교 때까지 다닌 학교에서 친구들은 이름 대신 ‘비뚤이’ ‘ET’ ‘병신’으로 불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을 쥐어 박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놀리는 세상을 향해 달려들면 들수록 김씨와 세상 사이엔 벽돌 한 장이 더 쌓일 뿐이었다.
가족에게서 위로 받을 법도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시각 장애인인 아버지, 소아마비 어머니 등 네 식구 중 셋이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유일하게 온전하던 네 살 터울의 남동생마저 김씨의 수감생활 중에 연락이 끊겼다. 때로는 식구 전체가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집에는 학교 간다고 해놓고 학교 뒷산에 가서 많이 울었다.
비뚤어진 얼굴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김씨는 먼저 얼굴을 바로 잡기로 하고 중학교를 졸업하자 상경했다. 얼굴 수술비를 벌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17세의 장애인에게 서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구인 광고를 보고 여기저기 찾아 다녔지만 “사람 구했다”는 답만 돌아왔다. 간간이 봉제 주물공장 등 잡일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도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서 해주는 밥이나 먹고 들어앉아 있지…’라는 공장에서의 수근거림 때문이었다. 평생 듣던 이야기, 자신에게 쏟아지는 놀림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객지에 아들을 내놓고 하루도 편할 날 없었던 어머니가 공장을 찾는 날엔 달랐다. “어머니까지 싸잡아 놀리는데 짐 싸서 나올 수밖에요.”
생계가 버거웠던 김씨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트럭에 실린 과일 상자며 건설 현장의 자재, 상점 물건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을 훔쳤다. 1997년 6월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한 사내와 경기 수원시의 한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그들을 제지하는 점원을 죽이면서 결국 10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됐다.
내년 7월5일 출소까지 13개월이 남았다. 높은 담이 세상의 놀림을 차단해줘 차라리 편했다면 편했던 교도소 생활이었지만 1년 후엔 그럴 수 없다. “신문도 보고 책도 읽지만 살아보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나간다고 해서는 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성한 사람들이야 마음만 다진다면 다시 안 들어올 수 있다지만 자신의 얼굴로는 어렵다는 것을 김씨는 과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평생 아들 노릇, 사람 노릇 한번 못해봤습니다. 나가면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고 싶은데…” 밝은 얼굴을 찾고 싶은 김씨의 소망은 오늘도 간절히 이어지고 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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