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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동영의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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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동영의 싹

입력
2006.06.0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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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은 씨앗에서 처음 나오는 어린 잎이나 줄기다. 싹수의 준말로 어떤 기운이 움트는 시초나 앞길이 트일 징조를 뜻하지만, 싹이 노랗다거나 싹수 없다는 식으로 장래성이 없다는 의미로 자주 쓴다. 싸가지는 사투리다.

다 아는 얘기를 꺼낸 것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지방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다시 희망의 싹을 틔우는 데 땀 한 방울이라도 보태겠다”고 말한 것이 눈에 띄어서다. 그는 마지막 선거유세에서는 민주개혁세력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싹을 살려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권력에서 멀어졌거나 비세(非勢)에 몰린 쪽을 윽박지르는 것은 언론의 바른 길이 아니다. 그러나 정 의장이 ‘희망의 싹’을 거듭 강조한 것을 으레 입에 올리는 정치적 수사로 흘려 듣기 어렵다.

그가 자칭한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이 집권 후반에 이르러 국민의 엄혹한 심판을 받은 마당에는 스스로 새 싹 운운 하는 것조차 염치없게 들린다. 현실의 국정과제뿐 아니라 민족사의 과거와 미래까지 제멋대로 주무르는 호기만발한 자세를 허문 것은 언뜻 가상하지만, 다시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기만적 속내가 얄밉다.

■그는 이순신 장군처럼 백의종군을 다짐하면서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것이 참된 대장부’라는 백범 어록까지 인용했다. 마치 불의에 억울하게 밀려난 영웅이거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신을 던지는 지사라도 된 것 같다.

물론 본인이 그리 믿을 리 없겠지만, 무섭도록 단호한 국민의 심판을 받고서도 개나리꽃처럼 화사한 퇴임사를 궁리하는 의식이 놀랍다. 그런 근거 없는 오만과 얄팍한 정략이 민심의 철저한 이반(離反)을 부른 것을 진정으로 뉘우쳤는지 의문이다.

■지금껏 정 의장을 시비하지 않은 것은 언론계 동료였던 인연으로 부당하게 옹호하거나 시샘할 것을 경계해서다. 그러나 나라를 이 지경으로 이끈 책임이 큰 그가 정계개편 발언으로 국민 심판을 비켜가려는 모습은 그야말로 싹수 없게 보았다.

또 ‘야당대표 얼굴에 난 흠집 하나 때문에’ 유능한 우리당 후보들이 홍수에 떠내려 간다고 한탄한 발언에서 그의 감성조차 저급하다고 느꼈다. 그는 곧 다시 몸을 일으켜 대권 도전에 나서겠지만, 어지러운 궤변과 위선으로 국민을 지치고 화나게 하는 대통령은 다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걸 깨닫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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