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전쟁은 전형적이었다. 길이 2m가 넘는 창과 원형 방패를 든 중무장 보병들이 8열 횡대로 천천히 걸어가다 적군과 근접하면 갑자기 돌진해 혈투를 벌이는 식이다. 상대편도 ‘팔랑크스’(phalanx)라는 같은 대형을 유지하고 있다. 전쟁은 공식 선전포고에 따라 하절기에만 할 수 있으며, 활 같은 원거리 발사무기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전통적 협약에 따른 전투 형태다. 농경지를 장기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신속하게 결판을 내는 ‘결전’(decisive battle)은 필수적이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책(원제 ‘battle’)에서 그리스인들이 이처럼 ‘전쟁은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합의된 전쟁담론을 따랐다고 말한다. 전쟁 방식은 무기나 전략 등 기술적 요인이 아닌 당시의 사회ㆍ문화적 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부터 춘추전국시대, 중세 유럽, 나폴레옹 시대, 최근의 테러전쟁 등 모두 9개의 전쟁에 문화라는 프리즘을 들이대고 있다.
영국 에드워드3세가 프랑스 필립6세의 왕위 계승에 반대해 일으킨 1346년의 ‘크레시 전투’. 백년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프랑스 전역을 약탈하고 살인ㆍ강간을 서슴지 않는다. 기사도의 실제는 이처럼 야만적이었지만 당시 문학 작품에서는 용기와 명예, 충성심으로 칭송했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기사도의 이상형을 어떻게 설명할까. 저자는 군사ㆍ정치 엘리트 계층이 기사도의 가치관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상 시합’이라는, 덜 폭력적이면서 공개적인 전쟁놀이를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뜬금없긴 하지만 귀족계급이 자신들의 특권을 과시하고 호전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대안 전쟁’을 만들었다는 발상 자체는 흥미롭다.
최초의 근대적 대야전(大野戰)으로 불리는 1805년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당시 풍미하던 낭만사조로 설명하고 있다. 계몽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전환한 유럽의 지적 풍토가 나폴레옹의 승승장구 현상을 설명하는 담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낭만주의가 영웅과 천재에 집착했던 것을 들어 저자는 당시의 전쟁담론을 ‘군사적 낭만주의’라고 불렀다. 전쟁론을 통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해 수행되는 정치의 연장’이라고 한 클라우제비츠를 대표적 담론가로 꼽았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군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재래식 전쟁처럼 다룰 때 “부시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라크전의) 상황이 복잡하게 진행”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새로운 ‘전쟁부’(戰爭賦)를 제안했다.
논쟁적 서술 구조에다 학술적인 내용도 많아 다소 부담스럽긴 하다. 하지만 미국 군사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저자가 ▦그리스의 전투대형 ▦기사도의 마상시합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등 알찬 책갈피를 군데군데 배치해 곶감 빼먹듯 읽는 재미도 있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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