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8)군은 최근 자주 악몽을 꾼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는다. 폐 속에 독한 연기가 차면서 숨이 가빠질 때쯤 놀라 깨어나 보면 한밤중 병실 안임을 알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악몽의 시작은 지난달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고양시 한 고교에 다니는 S군은 오후 7시40분께 3층 실험실에서 친구 한 명과 함께 폭죽을 만들고 있었다. 주 재료는 염소산칼륨 황 탄소 알루미늄으로 4월 ‘과학의 날’ 학교 축제를 위해 쓰다 남은 재료들이었다.
일은 그때 터졌다. 마찰이나 충격에 예민한 염소산칼륨이 사용 도중 폭발한 것이다. 폭음과 함께 유리창은 박살 났고 S군 등은 3~4㎙ 정도 튕겨 나가 떨어졌다. S군은 이 사건으로 오른손가락 3개와 양쪽 고막을 잃었다.
이 사고를 둘러 싸고 학교 측의 안일한 학교 안전 관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S군 등은 휴일 자율학습 도중 예전에 만들어 본 폭죽에 호기심이 발동해 과학실험실에 들어갔다. 평소 열쇠는 S군을 포함한 과학동아리 학생들이 돌아가며 보관해 왔다.
아무도 없는 과학실에 들어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문제의 시약이 보관된 실험실 내 준비실도 핀셋 같은 도구만 있으면 간단히 열 수 있을 정도로 잠금장치가 부실했다.
시약장도 문제였다. 위험 약품은 일반 시약과 분리해 잠금 장치를 하게 돼 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 이전에도 실험실에서 학생들이 축제용 폭죽을 수 차례 제작했는데 이를 확인하고 감독해야 할 담당 교사가 늘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 측은 보안 통제가 허술했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규 수업이 없는 휴일 교사 몰래 실험실에 들어간 학생에게도 책임은 있다”는 입장이다. 경기학교안전공제회도 “교장이 허락한 사항도 아니고 정규교과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라며 보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서울학교안전공제회 김태숙 사무국장은 이번 사고에 대해 “학교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학교의 관리 소홀 책임도 있다”며 “규정에 따라 정해진 학습활동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 애매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 과학 담당 장학사도 “교사가 없는 상태에 사실상 실험실이 개방됐다면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S군 부모는 “금전적 보상도 보상이지만 아이 책임 운운하며 발뺌만 하려는 학교와 교육당국에게 실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누구 하나 책임지고 일을 해결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학교 구성원들이 모금운동을 해 치료비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힌 정도이다.
실험실 사고는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남 광양시의 한 중학교에선 과학교사의 실수로 실험 도중 폭발 사고가 나 학생 10여명이 크고 작은 화상을 입기도 했다. 이 때문에 최근 학부모와 교사들 사이에서는 학교안전사고를 당한 학생과 교직원 등에게 요양ㆍ장애급여 등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교육인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사학법 개정 등에 순위가 밀려 제정되지 못했다. 정치권과 교육부는 상반기에 법률을 제정한다는 입장이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법안 내용에 공제료 전액 국가 부담, 유치원까지 의무 가입대상 포함, 무분별한 소송에 시달리는 교원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 등도 추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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