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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詩만 모아도 책 한권, 이근배 시인‘종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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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詩만 모아도 책 한권, 이근배 시인‘종소리는…’

입력
2006.06.03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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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詩歷) 반세기의 이근배 시인이 특별한 시집을 냈다. 기념시 시집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동학사 발행). 당대사 격정의 지점들을 관류하면서 시간을 기억하고 세상을 노래하고 그럼으로써 세대와 호흡한 시들을 모은 것이다.

어떤 시들은 오롯이 그 현장 역사의 함성이고, 거친 피의 격랑이다. 조선총독부가 철거되던 날 그는 “부르노라/ 비로소 내 어머니의 나라/ 구름낀 역사를 씻어내고/ 자랑스러운 내 조국의 이름을 부르노라…”(‘새 하늘이 열리는 날’)고 썼다. 또 어떤 시는 벅찬 감동의 탄성이고 뜨거운 눈물이다. “내 청맹과니로 살아왔거니/ 나를 낳은 내 나라의 산자락 하나/ 물줄기 하나 읽을 줄 몰랐더니/ 백두의 큰 품 안에 들고서야/ 목청을 열어 울게 되었노라”(‘대백두에 바친다’)

그의 시는 대부분, 선소리꾼의 매김 소리처럼, 얼을 실은 유장한 가락으로 흘러, 그대로 노래가 된다. “강은 처음 어머니였다/ 살을 나누어 나라를 낳고/ 피를 갈라서 겨레를 낳고/ 해와달과 별과 구름과 바람과…”(1986년 한강 준공 기념시 ‘한강은 솟아오른다’) 그 노래들은 때로는 맥을 돋우는 응원가로, 피곤을 달래는 자장가로, 슬픔을 눅이는 사랑의 노래가 된다. “무엇하러 금세기에 태어나서/ 빈 잔을 들고 있는가/ 노래를 잃은 시대의 노래를 위하여/ 모여서 서성대는가”(79년 문인 투옥 항의시위 속 시인행사 축시 ‘잔(盞)’)

1965년 8월 한국일보에 실은 광복 20주년 기념시 ‘새 날이 동트는 광장에’는 슬픔으로 기쁨을 넘어서는 기념시의 아름다운 격조를 만날 수 있다. “참 잘도 피투성이 되어 달려왔다/ 산악만큼 벅차야 할/이 너의 축일을 눈물로 어루며/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는/ 나의 노래는 오늘도 슬프다.//(…)세계의 가장 외로운 지역에서/ 전장에서 헐벗은 산야에서/ 너를 불러 마주보는 나의/ 눈시울이 자꾸 더워 온다.(중략)”

이 시대의 큰 소리꾼인 그는 자신의 이 모든 시들을 두고 “모두 내 것이 아닌, 나를 낳아준 흙과 물과 내가 살아온 시대가 흘리고 간 말을 주워담은 것”(‘시인의 말’)이라 썼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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