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한국에서 벌고, 쓰는 건 수입품이나 외국 나가서….’
한국 부자들의 소비 엑소더스가 본격화하고 있다. 고가의 외국산 소비재 수요가 급증하고, 환율 하락으로 해외 소비가 크게 늘면서 올해 전체 소비에서 ‘비국산소비(非國産消費)’가 차지하는 비율이 사상 최초로 10%를 넘어설 전망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100원을 소비할 경우, 90원만 국내에 남고 10원은 즉각 해외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31일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에는 5%대 중반, 2000년 6.4%에 머물던 우리나라 가계 총소비 중 ‘비국산소비’ 비율이 지난해 9.5%까지 상승했다. 비국산소비란 국내에서 소비된 수입품과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에서 소비한 것을 더한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내와 해외에서 소비한 규모는 약 352조원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33조5,000억원이 해외 소비(12조원)와 수입품 소비(21조5,000억원)에 사용됐다.
이 연구소 이지훈 박사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소비 고급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2000년 이후 비국산소비가 전체 소비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2005년 비국산소비는 전체 액수로 볼 때 2004년보다 7.6% 늘어났는데, 이는 전체 가계소비 증가율(3.2%)의 2배를 넘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소비 차별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연봉제와 성과급 등의 확산으로 소득이 급증한 부유층은 외제 승용차 등 고가의 수입품 구입과 함께 의료와 교육 등 해외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에는 비국산소비 비율이 10%를 넘어설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올 1분기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 비중(금액 기준)은 14.5%(6,917억원)로 지난해 전체 비중(11.8%)보다 3%포인트 가량 상승했다. 1분기 해외 신용카드 사용액(104억 달러)도 지난해 같은 기간(79억 달러)에 비해 31% 늘어났으며, 2005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지출한 돈 가운데 13% 가량은 외국에 유학간 자녀에게 보내졌다. 또 고급 의료서비스를 찾아 해외 병원에 입원한 한국인의 연간 지출액도 1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소득 계층별 소비패턴을 감안할 경우, 상위 20% 소득 계층의 ‘비국산소비’는 전체 평균을 크게 상회할 것”이라며 “부유층이 국내 소비를 기피하는 이 같은 현상 때문에 지표상의 소비 확대에도 불구, 체감 내수경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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