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렉션'(원제 'Election'ㆍ알렉산더 페인 감독ㆍ1999년)은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코미디이다.
윤리교사인 짐(매튜 브로데릭)은 학생회장 선거에 단독 입후보한 트레이시(리즈 위더스푼)의 고등학생답지 않은 권력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무능하지만 인기가 많은 미식축구부 주장 폴을 꼬드겨 출마하게 만든다. 뒤이어 폴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자유주의자 타미까지 출마를 선언하면서 사태는 점점 꼬여간다.
● 미국 정치에 대한 냉소적 조롱
능력도 배경도 출마동기도 전혀 다른 세 사람이 후보자가 됐지만, 문제는 그 셋 이외의 다른 학생들은 선거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걸 꼬집듯 후보연설회에서 타미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누가 이런 바보 같은 선거에 신경이나 써? 다 알잖아. 누가 뽑혀도 상관없다는 걸.
이 선거를 통해 뭔가 바뀔거라 생각해? 누가 뽑히건 간에 걔는 매년 하나씩 생기는 불쌍한 바보일 뿐이야. 나는 학생회장이 되면 아무것도 안 할거야. 다만 한가지 약속할게. 회장이 되자마자 바보 같은 학생회를 해체시켜 버리겠어. 그러면 매년 이런 쓸데없는 선거 안 해도 되잖아!" 그녀의 도발적인 발언은 그 동안 선거에 무관심했던 학생들을 열광시킨다.
치기어린 고등학생의 설익은 생각으로 위장한, 작가나 감독의 (미국) 정치에 대한 시니컬한 조롱이겠지만, 우리 현실에 대입해봐도 크게 빗나가는 얘기는 아니다.
대통령이 '잦은 선거 때문에 국정 운영이 힘들다'고 할 만큼 한 해 걸러 한번씩 있는 각종 선거에 이미 국민들은 무감각해진 지 오래고, 선거 때마다 최저기록이 경신되는 투표율이 이를 뒷받침한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다'라는 말이 한때는 재치 있는 말장난쯤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당연히 참으로 인정되는 명제가 돼버렸다.
심지어 공약(公約)이 정말 공약(空約)이었는지 검증하려는 노력마저도 새삼스러워진 사회분위기가 된 것도 같다. 나 역시 과거의 어떤 선거에서 내가 표를 던져 당선시킨 이의 공약 이행 여부에 대체로 무감하고, 명백히 공약을 파기한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분노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게 우리 정치의 학습효과다.
● 후보자와 유권자 성숙 계기로
오늘 '국정 운영 힘들게 만드는' 선거가 또 진행된다. 나는 아직 누구에게 투표할 지 결정하지 못했다. '일렉션'의 타미처럼 '누가 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후보자들의 공약들을 꼼꼼히 살펴보지도 못했지만, 영화 속 17세 소녀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공약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오히려 마음이 끌렸을지 모르겠다. 그 공약은 지켜질 가능성이 크니까.
'일렉션'의 엔딩은 등장인물들이 학생회장 선거를 거쳐 각자의 방식으로 성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의 선거가 우리나라의 미래에 도움이 되기를 물론 바라지만, 그에 앞서 선거 결과를 떠나 후보자와 유권자를 성숙시켰으면 한다.
김현석ㆍ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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