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야마 부시코’(1983)와 ‘우나기’(1997)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일본의 세계적인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ㆍ사진)가 30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1926년 도쿄에서 내과의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마무라 감독은 58년 ‘도둑맞은 욕정’으로 데뷔한 이래 40여년간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무당, 호스티스, 유랑극단 배우 등 하층민의 생활을 통해 일상 속에 담긴 일본인의 신앙, 욕정, 충동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감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서구 영화인들은 사실주의에 입각해 현실속에 숨겨진 잔혹함을 포착해낸 그를 ‘영화 인류학자’라고 불렀다. 관객들을 당혹하게 하는 영화화법을 거리낌없이 사용했던 그는 생전에 “지저분하고, 정말 인간적이면서 일본적인, 심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51년 와세다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쇼치쿠영화사에 입사하며 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명장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조감독으로 영화수업을 쌓다가 54년 소속회사를 니카츠로 옮긴 뒤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61년 미군기지에서 기생충 같이 살아가는 한 불량배의 생태를 신랄하게 조명한 ‘돼지와 군함’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일본 곤충기’(1963), ‘인류학 입문’(66), ‘신들의 깊은 욕망’(68) 등 다큐멘터리 형식이 가미된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과 함께 일본 뉴웨이브 영화의 대표주자로 활동했다.
일본 영화계가 침체에 빠진 70년대에도 그는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실제 호스티스를 출연시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린 ‘호스티스가 말하는 일본 전후사’(70)가 대표작이다. 연쇄 살인범의 행각을 통해 일본인의 밑바닥 심성을 드러낸 ‘복수는 나의 것’(79)은 범죄영화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가라유키상’(75)과 ‘간장선생’(98) 등으로 일본 군국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고희를 넘긴 뒤에도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2001)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던 이마무라는 지난해 암 진단 판정을 받은 이후 활동을 자제해왔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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