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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유럽은 원자력을 혐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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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유럽은 원자력을 혐오한다?

입력
2006.05.3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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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를 탔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의 루마니아계 독일인이 말을 걸어왔다. 그는 자동화시스템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독일 회사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당진의 한 공장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1개월 일정으로 처음 한국을 찾는 것이었다. 나도 “한국 기자인데 유럽 원자력 발전소 관련 시설을 취재하고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서로의 신상 캐묻기가 끝나자 대화의 소재가 떨어져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나는 월드컵 얘기를 꺼냈다. 유럽 사람들은 다 축구광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개최국 독일 사람 아닌가? 그런데 이 사람의 입에서는 이상한 얘기가 흘러 나왔다.

“온 나라가 축구로 하나의 색깔이 돼버리는 것이 마치 나치 같지 않아요?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미디어는 축구 이외에는 시선을 두지 못하게 하고, 주위 사람들은 축구에 무관심하면 역적으로 몰잖아요.”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유럽 사람이 모두 열광적으로 축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신화에 불과했다.

귀국 직후 접한 한 외신 기사도 이런 상식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고객에게 축구를 보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주겠다는 카페가 독일에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이 카페에는 ‘축구 청정구역’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다고 한다.

유럽에 대한 또 다른 신화가 있다. 유럽 사람들은 진보적이기 때문에 죄다 원전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혐오하고, 유럽에서 원전은 축출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 출입기자이기도 했던 나는 이 같은 신화를 내면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군데의 원전과 방폐장을 둘러본 이번 유럽 출장에서 이 명제는 상당 부분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럽 사람은 다 축구광이라는 생각만큼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신념이었다. 특히 세계 에너지 상황이 급변하면서 이 신화가 갖고 있던 부분적인 진실마저 오류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됐다.

스웨덴 스톡홀름 북쪽에 있는 포스마크 방폐장에서 만난 관리담당자는 “해저에 동굴을 파고 콘크리트로 폐기시설을 지은 뒤 점토와 모래층까지 만들기 때문에 중ㆍ저준위 폐기물의 방사능은 절대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원자력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역주민 90% 이상이 이 시설을 신뢰하고 있다는 설명에는 눈길이 갔다. 프랑스 남부의 카타로슈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도 시설에 대한 지지도와 신뢰도가 매우 높았다. 또 최근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과 프랑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원전 추가건설에 찬성하고 있다.

유럽 국가 가운데 일부는 원전과 방폐장에 반대하기도 했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가스분쟁과 유가 인상을 겪으면서 입장이 급변하고 있다. 독일은 2021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한다는 슈뢰더 정권의 정책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미카엘 글로스 경제장관은 이 달 초 “가스 분쟁은 독일 내에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원전 폐기 정책은 재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도 2010년까지 원전 10기를 폐쇄한다는 정책을 취소했다.

원전과 방폐장을 만들 것인가 여부를 놓고 논란하기보다는 어떻게 안전하게 건설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유럽이다.

이은호 사회부 차장대우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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