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31 지방선거는 크게 두 가지 궤적을 그렸다.
하나는 정책대결은커녕 변변한 이슈대결도 없이 이미지와 감성의 바람에 좌우된 선거라는 점, 다른 하나는 그 어떤 전략이나 정책, 변수도 광범위하게 퍼진 반여 정서, 즉 민심이반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역정서에 휘둘리는 영ㆍ호남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거 박빙의 승부를 연출했던 수도권에서조차 한달 전 판세가 끝까지 가는 싱거운 승부가 벌어졌다.
동의대 정외과 주봉호 교수는 30일 “정책대결은 실종되고 이미지만 난무했다”고 평가하고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의미가 크긴 했지만 ‘열린우리당만 아니면 된다’는 정서가 묻지마 지지로 표출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 교수의 지적처럼 반여정서는 선거전을 내내 압도했다. 여당에 악재가 생기면 지지율이 곧바로 내려갔지만 야당의 악재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한나라당만 해도 2월초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파문에다 4월 김덕룡ㆍ박성범 의원의 공천헌금수수 의혹 등 대형악재가 속출했지만 그 때뿐이었다. 한나라당의 공천잡음이 계속됐지만 오히려 지지층의 위기감을 자극, 이들을 결집시키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반면 우리당은 김한길 원내대표의 ‘경악할만한 비리’발언에 이은 이원영 의원의 5ㆍ18 광주민주화운동관련 실언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안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반여정서의 범람에다 이미지와 감성의 바람은 정책대결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이 터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물론 선거 초반에는 여야가 정책대결의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야고여저(野高與低)’의 초판 판세가 점점 고착되자 더 나은 정책공약보다는 더 자극적인 이미지 홍보에 매달렸다.
서울시장 선거가 단적인 예다. 4년 전 여야 후보들은 청계천개발 등 정책이슈를 놓고 연일 논리대결을 벌였지만 이번에는 여야 후보 모두 ‘보라 대 그린’, ‘참신함 대 깨끗함’ 등 이미지 선전에만 열을 올렸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이달곤 교수는 “서울시장 후보들의 경우 하나같이 시정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인물들이라 그저 색깔과 인상 같은 이미지 외에는 발표할 게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급조된 공약조차 예산문제 등 현실성이 없거나 심지어 중앙정부가 할 일을 시정목표로 내세우기까지 했다”고 꼬집었다.
흥행에도 실패했다. 월드컵대회와 겹친 데다 일찌감치 승부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유권자의 감성을 경쟁적으로 자극하는 선거전은 후보의 능력이나 정책의 차별성을 왜소화해 유권자의 무관심을 재촉한 부메랑이 됐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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