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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범죄 분석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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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범죄 분석해보니…

입력
2006.05.3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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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어느날. 서울 이문동 한 중국집에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찾아왔다.

그는 1개월 전 동네에서 벌어진 전모(24ㆍ여)씨 살해사건에 대해 물었다. 중국집 주인은 단지 그를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가는 남자”로 기억했다.

2년 뒤 전혀 다른 사건현장(봉천8동 세자매 피살)에서 미궁에 빠진 용의자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 “눈을 빨리 움직이는 남성!” 그는 바로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모(37)씨였다.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씨에 대한 범죄분석 보고서(가안)가 나왔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팀(프로파일링팀)은 “정씨의 여죄가 남아 완벽하진 않지만 집중면담과 성격검사 등을 통해 정씨의 프로파일링을 작성했다”고 29일 밝혔다.

무엇보다 그는 흔히 비교되는 연쇄살인범 유영철(36)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복기(復棋)하듯 범행현장에 다시 갔다

정씨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현장을 꼭 다시 찾았다. 심지어 주민을 상대로 수사 동태를 파악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정씨를 면담한 권일용(프로파일러) 경사는 “정씨가 사건 발생 1개월 뒤엔 꼭 현장을 찾았다”고 했다. 인터넷과 언론매체 발달로 수사정보를 쉽게 접하면서 ‘범인은 현장에 다시 안 간다’는 게 최근 통설. 정씨는 이를 역이용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확인하려는 고전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권 경사는 “정씨는 범행을 통해 희열을 체험했고, 그 느낌을 다시 맛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권 경사는 또 “‘범행대상을 물색하다가 실패했을 때도 다음 범죄를 위한 준비단계로 지난 사건의 현장을 찾았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유영철은 달랐다. 그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해 범행의 실수 및 대처방안을 분석했다. 범행장소 역시 초기 몇 건을 제외하곤 통제 가능한 자신의 오피스텔로 한정했다.

■범행자체를 즐겼다

정씨는 범행 뒤처리나 피해자의 상태, 시체 처리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정씨는 사회적 반감에 따른 응징수단으로 범행을 저지른 유영철과 달리 오로지 범죄 자체에 탐닉했다. 그는 면담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피해자를 보기 위해 돌려세우고 때렸다”고 말했다.

유영철이 공격대상을 꼭 살해하고 시체처리까지 깔끔히 했다면 정씨는 자신의 만족이 충족되면 피해자의 상태가 어떻든 서슴없이 현장을 떠났다. 정씨가 범행 뒤 불을 지른 것도 증거를 없애기 위한 우발적인 수단이었다.

정씨 프로파일링엔 그의 성격도 담겨있다. 경찰은 “그를 지지 받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형태의 삶”이었다고 진단했다.

정씨는 프로파일러에 대한 언급도 했다. 정씨는 “완전범죄를 추구했는데 현장에 남겨진 것 외에 내 행동을 분석한다는 걸 알고 좌절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그의 집에선 서울경찰청 프로파일러에 대한 자료가 발견됐다.

윤태일(프로파일러) 경장은 “흔히 정씨를 유영철보다 한 단계 떨어지는 살인범으로 인식하지만 그의 범행행태를 볼 때 잡지 못했다면 더 끔찍한 연쇄살인범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경찰청 범죄분석팀은 정씨 검거(4월22일) 1개월 전에 이미 연쇄살인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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