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작은 신문 기사를 보고 그 날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17주년임을 알았다. 초년과 중견 기자 시절, 시민단체와 교육부를 담당하면서 전교조 관련 취재를 꽤 했던 터라 나름의 감회가 있었다. 어느덧 20년이 다 됐구나…하는.
● 실천은 안 보이고 반대만
사실 언젠가부터 전교조 관련 기사를 접하면 짜증부터 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성 있게 ‘이렇게 하자’는 제안과 실천은 보이지 않고 ‘그건 싫다’는 반대만 무성하기 때문이다. 지난 19일자 전교조 단체교섭 소식지를 보자.
교원 평가 반대, 수학ㆍ영어 수준별 교육 반대,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교육 시범 실시 반대, 고교 시험문제 공개 반대, 방과후 학교 운영 반대, 공영형 혁신학교 및 자율학교 반대, 국제중학교 신설 및 서울시교육청의 좋은 학교 만들기 사업 반대, 교사에 대한 차등 성과급 지급 반대….
여기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저지하라’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에까지 이르면 언젠가는 전교조 자체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심지어 한 보수신문의 사설에는 “이들(전교조)이야말로 수구꼴통이다”라는 험한 말까지 나왔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불법단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학교 민주화, 사학 비리 척결, 촌지 없애기 운동 등으로 학부모들에게 “전교조 선생은 촌지 안 받는다더라”하는 신선함을 주었고, 그 때문에 일부 전교조 교사가 “6ㆍ25는 북침이다”는 등의 무식한 역사 교육을 해도 극소수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1999년 정식 교원 노조로 합법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런 신선함은 잊혀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시대착오’였다.
예를 들어 교사를 평가해서 문제가 많으면 해임하고, 잘하는 교사는 우대하겠다는 교원 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시대착오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평가와 경쟁 없이 62세까지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업이나 조직이 있을까? 또 한미 FTA라는 극도로 복잡한 과제와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저지’라는 한마디로 거부하는 수준을 가지고 학생들이 국제 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을까?
17년 전 윤영규 초대 위원장이 낭독한 전교조 결성 선언문을 다시 읽어 본다. “오늘의 이 쾌거(전교조 결성)는 (…) 민족ㆍ민주ㆍ인간화 교육 실천을 위한 참교육 운동을 더욱 뜨겁게 전개해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민족과 역사 앞에 밝히는 것이다.” 군부독재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시절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이 선언문에서 교육 파탄의 주범으로 비난한 “독재정권과 문교부, 대한교련 등 교육 모리배들”과 “저 간악한 무리들”은 이제 없다.
그 대신 세계화 시대의 무한경쟁,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교육 개혁 등 훨씬 어려운 과제들이 버티고 있다. 영국이나 미국 일본 독일 등의 교육 개혁은 그러한 도전에 대한 응전이다. 참교육은 훌륭한 이상이지만 현실의 도도한 물살 앞에서 이상만 보듬고 앉아 있다가는 이내 휩쓸려 가고 말 것이다.
● '투쟁'이후 대안 모색해야
지난 3월 윤 위원장 1주기 추도식에서 조재도(천안 목천중 교사) 시인은 스스로 전교조의 자성을 촉구했다. “처음 전교조는/ 교사도 노동자임을 선언하며 싸웠다./ 그로부터 스무 해가 지난/ 지금 전교조는/ 너무 노동자 노동자로만 굳어져 버렸다./ (…) / 우리는 무엇에 저항하며 사는가/ 많은 것을 잃고 난 우리는/ 지금도 그 날처럼 싸울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이기심과 사악함 어리석음을 넘어설 수 있겠는가”.
민족과 자주와 통일이라는 단어에 가슴 떨리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이제 거부하는 몸짓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 낼 수 없다.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가 한참 지났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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