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쟁력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경쟁국간 기술 격차 등이 좁아지며 디자인이 차별화의 핵심요소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들도 성능 보단 디자인을 보고 구매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디자인 혁명을 중심으로 우리나라가 디자인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제 등을 3회에 걸쳐 심층 진단한다.
“성공적인 디자인은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소비자 자신도 모르고 있는 숨겨진 요구까지 끄집어 내 형상화해야 합니다.”
LG전자가 지난해말 내 놓은 슬림형 휴대폰인 ‘초콜릿폰’이 6개월여만에 50만대 판매라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 비결에 대해 김 진 LG전자 정보통신디자인연구소장(상무)은 이렇게 말했다. 초콜릿폰이 대박을 터뜨리게 된 데 대해 업계에선 깔끔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의 몫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 상무는 나아가 고객조차 깨닫지 못했던 니즈를 포착한 감성 디자인이 초콜릿폰의 성공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사람들이 물질 만능주의와 기계 문명 속에 파묻혀 살면서 오히려 정적이고 인간적인 미를 그리워한다는 점에 착안, 감성적인 휴대폰을 기획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휴대폰 같지 않은 겉 모습으로 눈길을 끌어 손이 가도록 한 뒤 손이 닿으면 그제서야 불이 켜지도록 해 휴대폰이 마치 친구처럼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준 점이 소비자들의 감성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실 초콜릿폰이라는 이름도 감성에 호소한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됐다. 초콜릿은 시각 뿐 아니라 미각까지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통해 신비감을 주면서도 키패드 조명을 빨간색으로 처리, 섹시한 느낌을 강조한 것도 감성 디자인이다. 버튼이 겉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 다소 산만했던 종전 슬라이드폰의 단점을 보완, 버튼이 보이지 않게 디자인함으로써 심플함을 구현했다.
이러한 초콜릿폰은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데 이어 최근 해외에서도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스웨덴의 휴대폰 전문지 ‘모빌’은 초콜릿폰이 모토로라의 초대박 상품인 ‘레이저폰’을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LG전자는 한 때 휴대폰 내수 판매에서조차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 회사가 감성디자인을 바탕으로 내놓은 ‘초콜릿폰’ 이 글로벌 히트작이 되면서 LG 브랜드 위상마저 올려놓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이처럼 디자인은 기업 경쟁력을 넘어 기업의 생존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MP3 플레이어 업계의 부침은 이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레인콤은 2002년 전문 디자인 회사에 디자인을 아웃소싱, 독특한 디자인으로 대박을 터뜨린 ‘아이리버 프리즘’을 통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벤처기업에서 국내 MP3 플레이어 선두기업으로 성장했다.
매출액도 2004년에 4,540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 애플이 ‘아이팟’ 이라는 가벼우면서도 혁신적인 디자인의 MP3를 출시하며 전세가 뒤바뀌고 만다. 현재 애플은 5,000만대 이상의 아이팟 시리즈를 판매, 반석위에 올라선 데 비해 레인콤은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적자를 내며 고전하고 있다.
부도 위기에 몰렸던 닛산자동차가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디자인의 힘이 컸다는 게 중론이다. 닛산의 구원투수로 영입된 카를로스 곤의 리더십과 2만명이 넘는 인력 구조조정 등이 토대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나 실질적인 제품 경쟁력이 한 단계 향상될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인최고책임자(CDO)로 스카우트된 나카무라 시로의 역할이 컸다.
그는 미 캘리포니아 아트센터디자인대학에서 BMW의 클리스 뱅글 디자인 담당 이사, 포드의 제이 메이스 디자인 담당 부사장 등과 함께 수학했던 실력있는 디자이너였고 이후 닛산차의 혁신적인 디자인을 주도했다.
김 상무는 “기술격차가 좁혀지면서 디자인은 이제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기업 사활을 결정하는 핵심 가치가 되고 있다”며 “디자인 혁명은 이미 시작됐고 특히 사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과 인간성을 강조하는 감성 디자인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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