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르 도하에서 24일 열린 제5차 아시아협력대화(ACD)에서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양국 정치 관계의 기초를 훼손했다”며 참배 중단을 촉구했다. 일본 경제단체인 경제동우회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지난주에는 일본의 양식을 대표하는 오에 겐자부로가 방한하여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집하는 고이즈미 총리를 비판했다.
현재 동양평화를 교란하고 있는 진원지는 야스쿠니 신사다. ‘죽은 자들의 무덤’이 산 자들의 적대와 감정을 부추기고 국가 간의 화평을 깨뜨린다. 교과서 왜곡, 독도 침탈 등 일본의 도발행위는 야스쿠니의 망령이 무덤을 빠져 나오면서 강화되었다.
도쿄 시내에 자리잡은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유해를 모시는 곳이다. 어느 나라나 있는 일이고 이를 시비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침략전쟁의 주모자인 7인 전범의 유해가 포함된데 있다.
1948년 11월, 도쿄전범재판이 마무리될 무렵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는 “뉘른베르크 법정에서는 사형수들을 교수형에 처했으니 교수형으로 하고, 사망자의 유골은 가족에게 돌려주는 게 좋겠다”고 제의했다.
이에 소련 대표 데레비얀코는 “그자들의 유골을 보존해서 다시 일본 군국주의가 되살아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반대 의견을 폈다. 영국 프랑스 중국 캐나다 등의 대표들이 지지했다. 맥아더는 더 우기지 못하고 유골을 없애는데 동의했다. 전범들의 유해는 요코하마시 니시꾸에 있는 구보산 화장장에서 화장되어 대부분 비행기에서 태평양에 살포되었다.
그런데 전범들의 유골 일부가 헌병들(화장장 인부들이라는 설도 있다)에 의해 빼돌려져 구보산 한 구석에 암장되었다. 1953년 5월, 도쿄전범재판 당시 고이소 구니아키의 변론을 맡았던 산몬지 쇼오헤이가 구보산에서 전범들의 유골을 찾아내고 이들의 분골(分骨)은 미까와만 국립공원에 안치되었다가 야스쿠니에 합사되었다.
일본 정부가 전범들의 분골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것은 군국주의와 침략주의 정신이 담겨있고, 일본 지도층의 심리에는 그때 이루지 못한 대동아 맹주라는 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는 한 선린우호나 공존공영은 어렵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야스쿠니 참배를 비판하는 것이 한국과 중국 뿐이라고 둘러댔다.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최근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기 위해서는 야스쿠니에 참배하지 않겠다는 뜻을 스스로 밝히도록 해스터트 하원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촉구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일본이 독일처럼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하면 이웃 나라들과 관계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충고했다.
올해는 일제가 조선통감부를 설치하여 식민 지배를 시작한지 100주년이 된다. 그리고 일본은 1세기 만에 다시 독도 침략의 야욕을 드러냈다. 이는 고이즈미 만의 망동이 아니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소 외상 등 일본 지도층의 심층에 자리잡은 야스쿠니 망령의 발작 증세로 보인다. 전후 도쿄재판에서 전범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데서 야스쿠니의 망령이 지금 동양평화를 깨뜨리는 불씨가 되고 있다. 과거 청산의 당위성을 절감하면서 일본의 도발에 경각심이 요구된다.
김삼웅ㆍ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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