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비록 그 끝이 멀지 않다고 해도 여전히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일탈은 가슴 두근거리는 신나는 경험이죠.”
원형(圓形)의 이미지로 시간, 생명 개념의 형상화를 끈질기게 추구해온 ‘동그라미의 화가’ 정현숙 대진대 교수가 2002년 박영덕화랑 초대전 이후 4년만에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31일부터 6월 6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정씨는 300호가 넘는 평면작업 등 대작과 함께 기존의 동그라미 작업을 입체로 확장시킨 작품 등 신작 20여점을 선보인다.
국내 서정추상 계열의 대표적 작가의 한 사람인 정씨는 10여 년 전부터 ‘Before and After’라는 일관된 주제로 작업해오고 있다. 서구적 추상미술에 접목된 동양적 윤회사상이 그의 작품에서 동그라미로 표현된다.
그가 이 주제에 매달리게 된 데는 1998년 어머니의 죽음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전업주부로 가족과 집안 일 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뜬 후 ‘죽음 이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죽음은 완전한 끝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인가’ 하는 고민, 의문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선명하고 흐린, 밝고 어두운, 충돌하고 외면하는 수많은 원형은 우리 주위를 늘 맴도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순환과 그리고 화해를 의미하는 것 같다.
“ ‘더 이상 단순화시킬 수 없는 완전한 형태’인 원형이야말로 모성적인 시간과 생명, 끝도 시작도 없는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이미지 아닐까요.” 일본 평론가 미네무라 토시아키는 지난해 일본에서 잇달아 초대전을 가진 정씨의 작업을 보고 “찬찬히 화면을 응시하고 있으면, 일견 우연한 움직임에 몸을 내맡긴 듯하던 모든 원형의 형상들이 어디선가 - 화면 바깥에서도 - 서로 조응하면서 살아있는 것 같은 불가사의한 질서감을 느끼게 한다”고 평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씨의 작업이 마냥 철학적 사색 속으로 침잠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사색을 담금질해서 더없이 화려한 화면으로 탈바꿈시킨다. 그가 즐겨 쓰는 황금빛 색조를 기본으로 자개조각을 뿌린 회화작품들은 화려하다 못해 몽환적인 느낌마저 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캔버스는 사각형, 유화는 평면’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조각조각의 캔버스들을 이어붙여 어른 키 높이 만한 첨성대를 만드는 등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입체적 공간으로 확장하는 파격도 선보인다. 정씨는 “무엇보다 관람객들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각적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 문의 (02)736_1020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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