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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7시간 30분보다 긴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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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7시간 30분보다 긴 여운

입력
2006.05.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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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LG아트센터에서 러시아 극단 ‘말리극장’이 내한 공연을 가졌다. 1985년 초연 이래 20년 동안 세계 20여개 나라에서 공연한, 레프도진 연출의 ‘형제 자매들’2부작이다. 아브라프의 대하 소설을 연극화한 것이다.

스탈린 체제의 강권 정치와 농업 집단화가 불러온 민중들의 고난을 다룬 이 연극은 우리 연극사에 최장 시간 공연으로 기록될 것 같다. 1시간 반의 저녁 식사 시간과 20분간의 두 차례 휴식 시간을 포함해 7시간 반 동안 진행된 연극은 인간사의 보편적 경험에서 이끌어낸 감동과 배우들의 앙상블, 서사의 스케일, 무대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완성도 등으로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연극은 묻는다. 20세기의 전쟁과 전체주의, 사회주의 혁명은 인류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가?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이해 사이의 모순과 충돌은 또 어떠했는가? 인간이 꿈꾸는 낙원이 인간의 본성 앞에서 어떻게 배반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위대한 것은 왜 인가?

소설의 서술성을 극적으로 완벽하게 소화한 데는 레프도진의 유장하고도 유연한 연출력과 무대장치의 도움이 가장 컸다. 장대 위에 매달려 있는 여러 대의 스피커들은 이곳이 집단주의 아래 개인 삶의 내밀한 영역이 보장 받을 수 없는 사회적 공간임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무엇보다 이 연극의 묘미는 뗏목 같은 설치물 하나에 의존해 그 긴 드라마를 펼친다는데 있다.

뗏목을 띄우는 높낮이를 달리하거나 기울인 각도의 변화만으로도 공간 전환이 가능한 무대는 집과 증기탕 등의 외벽, 언덕, 밭고랑, 지붕, 운반선 바닥, 연단, 결혼식과 피로연이 펼쳐지는 의례적 공간 등 무궁무진한 변화를 창조하며 작품의 테마를 증폭시킨다. 역사의 위태로운 격랑 속을 인간성의 허약한 뗏목 하나로 건너는 사람들, 그 유약함과 위대함을 관객의 가슴속에 교차시키면서 그들을 인류의 ‘형제 자매’로 호명할 수 있게 하는 근원적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2000년 이후 세계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많은 공연들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리고 다수의 우리 공연이 해외무대로 떠났다. 해외공연을 간 레퍼토리를 보면 교포 위문공연 성격을 제외하고는 우리 문화를 알리는 전통물이거나 비언어적 퍼포먼스, 셰익스피어 등 서양 고전의 한국적 번안물이 대부분이었다.

레프도진과 말리극단은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제 당신들의 이야기를, 삶을, 역사를 무대에 펼치라고. 당신들의 모국어로 당신들이 관통해 온 20세기를 연극으로 증거 하라고. 한국 연극도 이제는 우리의 질감, 색채, 몸짓, 장단을 입힌 문화적 번역을 넘어 우리 역사와 삶과 경험을 품은 ‘모국어’로 된 텍스트를 가져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극작ㆍ연극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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