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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동산 4적론'과 환멸(幻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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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동산 4적론'과 환멸(幻滅)

입력
2006.05.2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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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싹쓸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횡행하는 선거판 소식에 다시 한 번 지난 대선 때의 벅찬 감동과 기대를 떠올린다. 착잡하다. 노무현의 눈물과 승리에 바쳐졌던 그 노도 같던 지지는 대체 어디로 사라지고, 이토록 지독한 환멸이 온 나라에 폐수처럼 넘실거린단 말인가.

이 정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애초부터 미망(迷妄)에 불과했던 것인가? 아니면, 이 정권이 국민을 배반한 것일까? 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이 정권과 국민의 연애(戀愛)는 이토록 참담한 파경에 이르게 된 걸까!

친구건 연인이건 부부건, 파경의 원인은 늘 멀리 있지 않다.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인 김병준씨가 느닷없이 들고나온 이른바 ‘부동산 4적(敵)론’은 권력 심장부에 자리잡은 환멸의 씨앗을 새삼 확인해준다.

‘4적론’은 김씨가 청와대 인터넷 국정브리핑에 올린 ‘불로소득 차단, 회군(回軍)은 없다’란 제목의 부동산 시리즈 기고문에서 나온 얘기다. 이 글에서 김씨는 복부인과 기획부동산업자, 건설업자와 일부 신문을 사실상 4대 ‘공공의 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들을 상대로 ‘치열한 논리싸움과 홍보전을 준비하는 한편, 이들과 균형을 맞출 공익적 시민단체의 활동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정책에 관해 보편적인 이해와 설득을 구하려는 노력 대신 비판적이거나 반대하는 다수의 국민을 ‘적’으로 매도하고, 무슨 문화혁명이라도 하듯이 ‘적’과의 결전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김씨의 주장은 공감 보다는 한숨을 낳는다. 지지층이 없지 않고 나름대로 정당한 정책을 추진하면도, 이 정권은 어떻게 이렇게 틈만 나면 국민의 반감을 극대화하는 짓을 반드시 저지르는지 그저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등에 걸친 참여정부의 정책들은 그 자체로는 노무현 당선자를 향했던 애초의 기대와 지지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주외교, 남북화합, 균형발전, 양극화 해소 등은 비단 지지자들의 요구를 넘어서 시대적 과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보편적 공감을 얻을 만한 아젠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은 관련 정책을 추진하면서 반드시 ‘적’을 만들어냈고, 대개는 정책 추진 과정을 그 ‘적’과의 ‘투쟁’으로 변질시켰다.

대체 김씨가 끄집어낸 ‘복부인’은 누구인가. 노 대통령이 언젠가 반(反)자주세력으로 언급한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란 또 누구인가. ‘반통일 보수세력’은 누구고, ‘재벌 옹호론자’들은 누구인가. 분파주의적 사고의 틀 속에서는 타도해야할 ‘적’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해와 편의대로, 자연스럽고 다양한 생각의 분포표를 형성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이 아니던가.

환멸은 결국 편협한 자기중심주의, 희박한 포용력, ‘적’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강퍅한 분파주의, 유연성 없는 교조주의 등 정책 자체 보다는 이 정권의 요령부득에서 비롯된다.

공허한 비판을 되풀이하려는 게 아니다. 고쳐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안다. 다만 이 정권에 대한 환멸이 이제 충분히 정당한 정책 아젠다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인 반감을 낳는 상황을 맞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 정권이 선거에서 어떤 심판을 받든, 이후에 정치판이 어떻게 격변하든 관심 없다. 다만 지금 권력 주변에서 경쟁하듯 꿈틀거리는 세 치 혓바닥들이 그나마 정당한 정책에까지 불필요한 오물을 덧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가에 해를 끼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장인철 경제부 차장대우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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