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강국’의 명성을 누려온 한국의 앞날을 어둡게 보는 국내외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일찌감치 규모의 경제와 혁신사이클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선점한 반도체는 우월한 지위를 지키고 있으나, 휴대전화와 LCD(액정표시장치) 등 여타 부문은 대만 중국 북미 유럽 등의 경쟁업체들에 밀려 성장한계점에 봉착하고 시장점유율도 날로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내한한 세계적 리서치업체 아이서플라이의 데릭 리도 대표는 “글로벌 기업들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투자 확대로 한국기업들은 설 땅을 잃고 있다”며 “특히 휴대전화 분야의 경쟁력 상실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1등에 안주해 방어전략으로 일관한 것이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전 세계 어느 시장에나 먹힐 수 있는 획기적 디자인의 히트상품을 개발하라고 충고했다.
때마침 국내 증권사에서도 “올해 세계 휴대폰 시장은 인도 중남미 등 신흥 경제의 저가 단말기 수요와 유럽 북미 시장의 카메라폰 대체수요 등으로 10% 성장이 예상되지만 한국 업체들은 디자인 차별화와 모델 다원화에 뒤처져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노키아와 모토롤라 등 선발업체들이 저가의 혁신제품으로 점유율을 높이며 과실을 즐기는 반면 삼성전자 LG전자는 시장대응에 실패, 점유율 축소와 수익성 악화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1위를 지켜온 LCD시장도 대만 등의 추격으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고가의 다품종 소량생산 전략으로 단기간에 세계 3~4위의 시장을 장악한 국내 업체들의 노력과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제품개발과 디자인, 마케팅에서 혁신과 도전의 진취성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얼마 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도 한국기업의 위험회피 경향을 비판하며 “완전히 새로운 산업,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도약하지 않으면 중국에 추월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 경제와 기업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세기의 미아’가 되지 않도록 머리를 맞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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