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실컷 먹기 위해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세번 인신매매를 당하고, 두차례 강제 북송됐습니다. 북한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창고에 방치된 시체들을 옮겨 매장하는 일을 했고, 너무 배가 고파 길가의 옥수수를 따먹었다가 손가락 뼈가 부러질 정도로 고문을 당했습니다.”
북한인권법 발효 이후 최초로 난민자격을 인정 받아 5일 미국에 망명한 탈북자 6명(남자 2명, 여자 4명)은 23일 로스앤젤레스 에어포트 힐튼호텔에서 첫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탈북 배경과 중국과 북한에서 겪었던 참상을 생생히 증언했다.
짙은 선글라스에 야구모자를 쓰고 나온 이들은 “아직도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탈북자들과 북한 주민들이 우리처럼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중국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에 나설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탈북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찬미(20ㆍ여ㆍ가명)씨는 곰 인형을 가슴에 안은 채 “북한 수용소에서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7명중 나만 살아 남았다”며 중국에서의 인신매매와 강제 북송된 사연을 울먹이며 증언했다. 찬미양은 “김정일이 없어지는 날이 통일되는 날”이라며 “김 위원장이 빨리 죽게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한나(36ㆍ여ㆍ가명)씨는 예술체조 교사로 근무하던 중 남편이 군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생활이 어려워져 국경장사에 나섰다가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했다고 말했다.
한나씨는 “중국내 국경지역의 한 집에서 준 빵을 먹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 보니 지하실에 손발이 묶인 채 감금돼 있었다”면서 “2만위안에 팔려 중국인과 살게 됐지만, 뼈가 부러지는 구타를 당해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지옥 같은 삶이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머리에 뼈가 나온 상처가 있다는 한나씨는 “중국인들이 조선족 여성을 폭행하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공안에 고발한다는 위협에 반항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나오미(34ㆍ여ㆍ가명)씨는 “강제 북송됐을 때 입고 있던 청바지를 본 북한 관리들이‘미국의 상징’이라며 추운 겨울 바지를 강제로 벗기고 대신 닳아 빠진 바지를 입혔다”면서 “만삭의 몸으로 수용소에 들어온 한 임신부는 강제 낙태를 당한 뒤 치료 없이 그날로 재수감돼 화장실에서 심한 하혈을 했는데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요한(가명)씨는 “미국에 가면 가족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고, 한국으로 건너간 탈북자들이 정착하지 못한 채 나쁜 이미지를 남겨 취직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며 망명지로 미국을 선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을 도운 천기원 목사는 이날 기자회견 직후 “제3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 중 6~7명 정도가 더 미국에 들어올 것”이라고 밝혔다.
미주한국일보 LA 본사=황성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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